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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고싶은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일생을 살면서 험한 꼴 당하지 않고 안심입명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이 하어수선하니 나라고 감옥에 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수 없다. 그렇게 되면 나도 어쩔수 없이 몇권의 책을 주섬주섬 챙기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가족들은 성경을 넣어줄 것이지만, 나는 다른책을 생각할 것이다. 차입할 책의 권수가 제한되었다면 나는 망설일 것이다. 장자의 『남화경』이며, 정적들의 모함에 빠져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쓴 로마의 정치가 보에시우스(A. Boethius)의 『철학의 위안』이며, 증부선지의 『십팔사략』이며, 루트비히(E. Ludwig)가 쓴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을 뽑아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내 『삼국지』를 빼놓을수가 없다.
내 나이 지천명에 이르러 이룬 것은 없지만 이나마 사람노릇을 하게 만들어준 것은 위의것들외에 몇권의 책이라고 할수 있겠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집과 연구실에 두질을 두고 틈틈이 읽는것은 역시 『삼국지』다. 『삼국지』를 세번 읽은 사람과는 말다툼을 하지말라는 말이 있지만, 꿈많던 소년시절에 나는 아마 줄잡아 30번은 넘게 읽었을 것이다.
『삼국지』를 가리켜 군담·무협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책의 진가를 모르는 소치다. 거기에는 인간이 보여줄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고, 사랑과 증오가 있고, 지혜와 바보스러움이 있고, 기쁨과 비통함이 있고, 음모와 지략이 있고, 배신과 절의가 있다. 거기에는 플라톤을 능가하는 제갈량의 수사학이 있고, 예레미아에 버금가는 ?국이 있고, 프로이트에 못지 않은 심리 묘사가 있다.
황산덕선생은 생전에 『나는 「삼국지」를 너무 읽어서 한국에서 출세를 못했다』고 푸념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말은 매우 역설적이다. 그가 『삼국지』에 그만큼 심취했었기에 그만한 인물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감수성이 강한 이 시기에 청소년들은 많은 감동과 함께 인생의 갈길을 어렴풋이 결정하게 될것이며 중년과 노년에는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선현의 말씀에 「남아수독오거서」라고 했지만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남아수독삼국지」라고.
신복룡 <건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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