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제 북 인권도 거론할 때 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작가 황석영(63.사진)씨는 인터뷰에서 최근 새로운 장편소설 '바리데기'의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내년 초까지는 끝낼 계획이다. 이 소설의 바탕은 한국 전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고대 설화인 바리데기 공주에 얽힌 이야기다.

대왕마마의 일곱째 딸인 바리데기 공주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림받았음에도 병에 걸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신선세계로 가서 온갖 어려움을 견딘 뒤 끝내 불사약을 얻어온다는 내용의 효행담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유럽을 무대로 이주와 이민의 문제로 풀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세계 시민의 시각으로 한국 전래 설화를 새롭게 보는 셈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실제로 '세계 시민'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자신과 한국의 문제를 세계의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프랑스의 극단과 자신의 신작 희곡을 합작해 무대에 올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설 자료 수집을 위해 최근 중국을 다녀온 경험을 얘기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이제 북한 인권 문제도 본격적으로 거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인권 문제로 북한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좌파 진영의 신중론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과거 북한을 방문한 뒤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제목의 방북기를 쓸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유럽에 체류하는 동안 크게 달라진 문학과 사고의 좌표를 느낄 수 있었다.

황씨는 "작가의 세계는 양손잡이의 세계"라며 "이를테면 지식인의 기능은 비판하는 일인데 작가도 지식인의 일종이니 먼저 비판하게 될 것이지만 문학이 삶의 조화와 상생을 추구하므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시켜야 마땅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좌우가 있다면 리영희 교수의 책 제목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가 답이 될 것"이라며 "좌우는 하나의 기능이 돼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제는 '이념의 시대가 아니라 프로페셔널의 시대'라고 하는 소리는 서로 사회적 기능을 인정하자는 얘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말미에 황씨는 지난해 자신이 노벨문학상 최종심에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황씨는 "당시 독일에 있었는데, 수상자 발표 직후 베를린에서 독일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고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큰 작가라고 남들이 떠드는 것을 싫어한다"며 "노벨상의 존재 이유는 긍정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시쳇말로 촌스러우며 우리 사회가 한국 문학과 작가들에 대해 사랑과 자부심이 있다면 제발 그런 법석을 떨지 말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황씨는 올 노벨 문학상에 대해 "터키의 과거 국가주의 폭력을 폭로한 오르한 파묵이 받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다고 보았다"면서도 "수상자인 해럴드 핀터가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과 세계의 환멸적인 현실에 대해 토로하는 목소리는 감명 깊었으며 노벨상의 존재 이유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노벨상 수상 성향에 만족한다"면서도 "문학은 언제나 별개의 것이며 나는 평생 직업 작가로서 내 힘으로 먹고살아 왔고 독립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중편 '한씨년대기' '객지', 단편집 '삼포 가는 길', 장편'무기의 그늘' '손님' '오래된 정원' 등 모두 6권이 프랑스어로 번역돼 나와 있으며 현지 언론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에는 세 편의 판권을 팔았는데 '손님' 한 권이 지난해 말 출간돼 나왔으며 서적상연합에서 좋은 책으로 선정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