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사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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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하루 아침에 깨어보니 천하의 시인이더라」는 것은 바이런의 말이지만,언젠가 모르는 사이에 주객이 되고만 것은 나의 경우』라고 탄식했던 당대의 주선 조지훈 시인의 글가운데는 유독 술에 관한 것이 많다.
그래서 시우인 박목월편저의 『문학강화』에 인용된 자신의 글이 대부분 술이야기인 것을 알고 「엄중한 항의」를 했더니 목월은 『당신 글가운데 술이야기 빠진 것이 몇편이나 있느냐』고 오히려 역습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조주선의 수필에 「주도유단」이란 글이 있다.
주도에도 엄연한 단이 있는데 술을 마신 연륜,같이 마신 친구,마신 기회ㆍ동기,그리고 술버릇 등을 종합하면 그 단의 높이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의 분류에 의하면 술을 못하지는 않지만 안먹는 사람(부주)으로부터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폐주 또는 날반주)에 이르기까지 18단계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조지훈 시인이 스스로를 9등급인 학주진경을 배우는 사람으로 바둑의 초급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날반주가 9단인데 비해 주선이 14등급 5단에 불과한 것을 보면 가위 주도의 높이와 깊이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면 주선으로 알려진 이태백의 주량은 어느 정도였을까. 하루에 3백잔씩 1백세까지 살면서 마실 계획을 그는 『양양가』라는 시에서 밝혔지만 실제로 그는 술 한말 마시고 시 1백편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한말(1두)은 요즘의 한되 꼴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그가 즐겨 마신 술은 독한 노주가 아니라 우리의 막걸리 비슷한 순한 술이라는 설도 있다.
확실한 근거는 없으나 역사상 가장 술을 많이 마신 10대 주호는 소크라테스,알렉산더대왕,클라우디우스대제,칭기즈칸,피터대제,조지 워싱턴,루이16세,건륭제,에드워드8세(윈저공),파루크왕이라고 한다. 술김에 루비콘강을 건너던 시저가 탈락된 이유는 클레오파트라와 마신 것을 색주로 치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색주는 조시인의 분류에 따르면 6등급에 불과하다.
이런 얘기는 모두 최근에 출간된 언론인 박석기씨의 편저 『호모 비불루스』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호모 비불루스란 「술을 알고 좋아하는 인간」이란 뜻의 라틴어. 이 책은 주당들을 위한 잡학사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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