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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 처우개선」제언 일측대표 오누마교수 동경대(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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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식민지배 반성하면 「차별」없애야”/“일인 전쟁책임 정식사과 마땅/「법적지위」입법 불가능 아니다”
재일한국인 3세의 법적지위 및 대우문제가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간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30일 열릴 한일 외무장관회담도 양측이 각기 최종안을 내걸고 팽팽히 맞설 기세여서 한일간의 해묵은 마찰은 일본측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만 타결이 가능하리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런 가운데 23일 동경과 한국에서 동시에 『재일동포의 차별 없애야 한다』는 공개제언이 한일 각계대표 2백5명의 서명을 받아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재일한국ㆍ조선인처우개선에 관한 제언­열려진 일본사회와 동아시아의 미래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일본측제언은 서두에 『재일한국ㆍ조선인의 존재는 1910년 한일병합과 그 후의 식민통치에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재일한국ㆍ조선인에 관련된 입법은 이에대한 솔직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그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전후 처음으로 90명이나 되는 일본 지식인 및 국회의원이 참여하여 「일본식민지배의 청산과 반성」에 의견을 모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 정주하는 구식민지 출신자등의 법적지위에 관한 기본법」(초안)을 제언정신에 따라 손질하고 있는 일본측대표 오누마 야스아키교수(대소보소ㆍ44)를 26일 동경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재일동포의 법적지위개선운동의 배경과 향후 활동방향등에 관해 알아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요지.
­23일 발표된 제언에 대한 일본국내 반응은 어떠했는가.
『공동제안자인 김경득변호사(우리법률사무소)ㆍ다나카 히로시(전중횡) 애지현립대교수등과 함께 중의원 및 참의원의장을 만나 「제언」을 전달하고 초당적으로 의원입법이 되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반응을 받아냈다.
또 가이후(해부)총리이하 관방ㆍ외무ㆍ법무 등 일본측 관계장관을 비롯,한국의 노대통령,북한 김일성주석에게도 이 「제언」을 발송했으며 경단연ㆍ일경연 등 재계ㆍ민단ㆍ조총련ㆍ자유인권협회 등 70여개 단체에 이 취지에 동참해 줄 것을 바라는 서신을 보냈다.
「제언」정신에 따른 「법안」을 작성,이를 놓고 한일양국 대표가 모인 가운데 오는 6월2일 심포지엄을 열어 최종안을 작성할 예정이다.』
­이 법률안 내용은 양국 정부간에 협의가 한창인 「법적지위에 관한 협정」개정안과 큰 차이가 있는데 일본의회가 입법할 가능성이 있는가.
『일본국민들 사이에 아직도 「재일한국인」문제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안자들이 초당파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를 통해 재일한국인 문제에 대해 여론을 환기시키는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한다.』
­재일한국인 3세문제와 관련,노대통령의 방일시 전쟁책임에 대한 일왕의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한국내에서 나오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재일한국인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 연구회 멤버들은 일찍부터 국회가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결의를 하든지,일본정부가 앞장서 분명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소련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전전 폴란드에서 일어났던 「카친숲」 대학살사건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는 최근 발표한 것을 보더라도 일본인으로서 전쟁책임에 대해 정식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다. 민주주의국가의 일원인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럽다.』
­3세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성의부족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한국인에게 이번 기회에 말하고 싶은 것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아직도 이 문제의 중대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않으며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노대통령의 방일로 어느정도의 매듭을 지어주기를 기대하고는 있으나 모든 문제가 일괄타결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노대통령의 방일이 「3세문제」 논의의 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만도 그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현안가운데 한국측에서 요구하고 있는 9개항목 중 특히 지문날인과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의 폐지 여부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재일한국인을 범죄인 취급하는 지문날인제도는 없어져야 하지 않는가.
『나도 노대통령 방일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경찰청이나 법무성의 반대가 큰 벽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인 지위개선문제에 앞장서게 된 계기라도 있는가.
『지난 69년 대학4년(동경대)때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악반대투쟁에 서명하면서부터 관심을 갖게 됐다.
70년부터는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위반사건으로 사형판결을 받은 김규남ㆍ박노수 등 재일유학생 정치범 구명운동에 참여해 한국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76년이후 지금까지는 사할린 한인문제해결에 힘을 쏟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재일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크다는 것으로 느끼게 됐다.
사할린 한인문제는 처음 소련측에 의사를 타진할 때만해도 반소ㆍ반공운동으로 오인 돼 난관에 부딪쳤으나 동해대총장으로 있던 마쓰마에(송전중의)씨의 중재노력으로 쉽게 풀렸다.
85년 한국적십자사 유창순총재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쓰마에씨가 직접 소련공산당간부와 협의한 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현재 사할린 잔류한국ㆍ조선인문제 의원간담회(회장 원문병형 자민당참의원)가 초당적으로 구성돼 1백70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 「제언」서명운동도 이들의 도움이 컸다.』
­한국에도 이 운동에 호응하는 인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학생시절 입영법 반대투쟁부터 알게 된 한국의 이한기 전총리를 지금도 스승처럼 모시고 있으며 이번 제언의 한국측 발기인인 최상언(고대) 박춘호(고대) 민관식(아세아정책연구원장)씨 등과 두달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일본측 제안에는 다나카 히로시교수와 김경득변호사,배중도씨(천사시친목관관장) 등이 기초한 「재일한국ㆍ조선인의 보상ㆍ인권법」이 큰 도움이 됐다.』
­현안해결이 늦어지면 한국내 반일감정이 고조될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의 여론이 너무 성급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 일본의 일반인들이 이 문제를 이해하도록 시간을 두고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무엇보다 귀화가 아닌 자기의 권리로서 국적취득을 할 수 있도록 일본관계법규를 고쳐나가는 게 중요하다.
「제언」에서도 밝혔지만 일본은 이제 치안상의 이유나 단일민족신화를 버리고 일본국민과 재일한국ㆍ조선인을 동등하게 취급해야할 때가 되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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