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하성 펀드는 태광그룹을 첫 타깃으로 잡아 계열사인 대한화섬의 지분을 5.15% 확보한 뒤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 각종 펀드의 규모가 커지면서 덩달아 기업 경영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펀드의 경영간섭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 '펀드 자본주의' 약인가 독인가='펀드 자본주의'는 펀드가 기업 경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문제는 덩치가 커진 펀드가 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해 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위세를 떨치는 기업지배구조개선 펀드 등의 경영간섭과 요구 강도는 상당히 세다. 대표적인 게 태광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장하성 펀드나 투자목적을 경영참여와 지배구조 개선이라고 밝히고 코오롱유화 지분 5.68%를 산 호주계 헌터홀 펀드 등이다. 국민연금도 1500억원 규모의 기업지배구조 관련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이들 펀드는 대부분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 이들의 주장에 따라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가 14일 발표한 '상장 법인의 IR 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장 법인 중 IR(기업설명) 조직을 설치한 기업이 지난해 20.8%에서 올해는 25.1%로 늘었다. 또 펀드의 성장이 한국 자본시장 확충에 기여를 한다는 긍정적 요인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경영 안전성만 해친다는 지적도 많다. 펀드의 간섭이 많아질수록 해당 기업의 경영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펀드 눈치를 보느라 장기적 안목의 투자보다는 단기적으로 현금 확보나 자사주 매입 등에 주력하게 된다. 기업의 성장 잠재력 확충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실제 상장 기업의 자사주 보유 금액은 2001년 8조2000억원(보유 비중 3.2%)에서 올 3월 31조2000억원(4.7%)으로 늘었다.
한국투신운용 김범석 사장은 "수익이 생명인 펀드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 바로 주가가 폭등하는 게 과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 "펀드도 투명성 강화해야"=펀드가 기업의 생명줄을 쥐는 새로운 '권력 기관'으로 등장한 만큼 펀드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운영의 합리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영주 수석연구원은 "금융당국의 관리를 받지 않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예컨대 헤지펀드 등에 대한 등록제도 및 공시 강화 도입 등이 그것이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장치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날로 커지는 펀드의 힘에 대응하기 위해 복수 의결권주 발행 허용 등 경영권 보호장치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