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아가씨 불우청소년에 회화무료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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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벽안의 미국 아가씨 캐런 타일러양(28).
그녀가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영어회화 과외교사를 자청했다.
현재 직업은 극동방송국 해외선교담당.
지난해 4월 한국에 온 타일러양은 금년8월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한국인 청년과 화촉을 밝힐 예비새댁의 꿈에 부풀어있다.
한국인의 아내가 된다는 생각에 더욱 한국을 사랑하게됐고 한국사회와 문화에 애착을 갖는다는 그녀.
그러나 우연찮은 기회에 한국학생들의 과외 얘기를 듣고 놀랐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면 한과목당 한달에 50만∼1백만원씩 과외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도무지 자신으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충격이었다.
『과외공부 얘기를 듣고 머리에 떠오른것이 저소득층 자녀에 관한 것이었어요.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는 누구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경제적 부담때문에 교육의 조건을 달리한다는 것은 부조리한 일 아닙니까.』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해 자신이 할수있는 일을 찾던 타일러양은 교회를 통해 알게된 은평구청으로부터 강사초빙제의를 받았다.
구청과 은평종합사회복지관측에서 조심스레 제의하는 강사료도 단호히 거절했다.
숙소가 있는 여의도에서 영어회화교실까지 교통비도 마다했다.
자원봉사라는 명분때문이 아니다. 시내버스를 타면 쉽게 오갈수 있는데 그정도 교통비는 본인의 수입에서 얼마든지 부담할수 있다는 변.
『학생들에게 직접 받는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는다면 학생들은 내가 돈때문에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쉬울테고 그러면 나와 학생들간의 격의없는 대화가 불가능해져 가르치는 효과도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보스턴에 있는 대학에서 재정학석사까지 마친 그녀지만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처음이어서 첫강의 시간을 앞두고 밤새워 영어회화책을 뒤적이고 강의록을 준비했다.
은평복지원 청소년독서실을 이용하는 중학교2, 3학년 25명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6시부터 1시간20분씩 진행되는 영어회화교실은 24일 첫수업을 가졌다.
학생들에게 미국식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시작된 수업은 다소 어색함을 떨치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서툰 한국말은 웃음꽃이 피면서 모두가 하나가 됐다. 『나 한국말 잘 못하니까 여러분 도와주세요.』
빅터라고 미국식이름을 지은 김진일군(l6·상신중3년)은 『고입연합고사의 영어듣기평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특히 선생님이 예쁘고 친절해 열심히 배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회복지관 관장 김선심씨(60)는 『독서실 이용학생들이 대부분·과외공부등을 받기 힘든 저소득층 주민의 자녀들이어서 평소 이같은 프로그램의 설치가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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