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영광과 좌절 <5>|백인지배 시달리는 소외된 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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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디오(Indio).
라틴 아메리카를 가면 흔히 만나게되는 사람들이다.
얼굴 생김새와 검은 머리, 체구등이 우리와 아주 비슷해 고향사람을 만난것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들의 가난과 억압·착취에 찌든 비참한 삶을 눈여겨 보고나면 연민의 정을 훨씬 넘어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수 없다.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메스티조까지를 합치면 인디오들은 분명 라틴아메리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백인들의 지배에 여전히 복종하면서 변방부로 밀려 「소외된 다수」가 된채 숙명론과 좌절감에 빠져있는 인디오들-.
서글프게도 라틴 아메리카의 인디오들은 농민·도시빈민과 함께 이 대륙의 한스러운 「가난」을 대표하는 3대계층의 하나다.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의 인디오 어부들-.
인디오 어부들은 새벽부터 허약하기 이를데없는 커누나 뗏목을 타고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 여름철에는 운이 좋으면 한달에 50달러 정도의 벌이를 하지만 우기인 겨울철에는 한달 수입이 5∼6달러에 불과할 때도 있다.
커누나 뗏목을 빌려 탈 경우는 그 소유주가 어획량의 50%를 차지한다. 잡은 물고기는 중간 상인들이 사서 바로 면전에서 4∼5배 값으로 도시 상인들에게 되판다.
대부분의 아마존지역 인디오 어부들은 변소·상수도·전기가 없는 통나무 움막이나 벽돌 판자집에 산다.

<절반이상이 문맹>
이들은 또 너무 가난해 책·공책·교복등을 사줄수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못한다. 따라서 아마존 밀림의 인디오들은 절반이상이 문맹이다.
온통 체념적인 좌절감에 빠져있는 이들 인디오들은 고기를 판 그 근근한 돈으로 우리나라 소주와 비슷한 값싼 핑가(Pinga·옥수수술)와 카샤샤(Chachaxa) 같은 술이나 사마시고 노름판을 벌이기 일쑤다.
인디오어부들에게도 라틴 아메리카의 뿌리깊은 가톨릭신앙은 어렴풋이나마 전파돼 낚시질을 하다가 큰 고기가 문것 같으면 하느님께 그 고기를 잡게 해달라고 성호를 표시하지만 작은 고기같은 느낌이 들면 성호를 긋지않는다.
페루 안데스산록의 쿠스코국제공항-.
뛰어난 금은세공술과 토기등의 찬란한 문화로 마야·아즈테카문명과 함께 중남미3대 문명의 하나인 잉카문명을 남긴 잉카제국의 고도인 쿠스코는 아직도 전형적인 고산지대의 인디오촌이다.
공항 출구를 나서면 길다란 댕기머리에 신사용 중절모같은 알팔파초 모자를 쓴 인도오여인들이 어린아이를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멘채 1달러내외의 관광민예품들을 한아름씩 들고 몰려들어 사라고 권한다.
또 이 인디오 여인들은 고산동물로 짐을 나르는 수단이기도 한 산양 비슷한 그들 특유의 라마를 한마리씩 데리고 관광객들과 같이 기념촬영을 해주면서 1달러씩을 받기도 한다.
인디오여인들은 머리에 모자는 썼지만 발은 모두 맨발이다. 인디오들의 맨발은 쿠스코시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옛 고산도시였던 마추피츠로 이어지는 험준한 산악지대의 인디오들도 역시 똑같다.
그 험한 산악길의 돌부리에 채고 지금도 사람이 어깨에 줄을 메고 끄는 저 원시시대의 나무 쟁기로 밭을 갈아 농사를 짓는 노동속에서 닥달을 당한 인디오들의 맨발은 발등이 거북등처럼 갈라져있다.
쿠스코에서 마추피츠로 가는 열차가 서는 계곡의 역마다에는 가난한 인디오아이들이 몰려나와 차창 너머로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동전들을 줍는다.
동전을 줍는 헐벗은 아이들의 몰골은 인디오들의 가난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라틴 아메리카 인디오의 착취와 억압에는 가톨릭도 깊은 관련이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는 15세기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중남미대륙을 식민지화한 이래 최근까지 줄곧 주인과 노예를 가르는 제도를 유지시켜주면서 원래 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오들을 자기의 고향땅에서 이방인화시키는데 적지않은 기여를 했다.
실은 70년대 중남미를 풍미하면서 종속이론·피억압자의 교육학(일명 의식화교육론)등과 함께 구미에 강력히 대항,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은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 자생의 「해방신학」도 가톨릭교회가 이같은 중남미의 부도덕성과 저개발의 주요 요인이었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볼수있다.
멕시코시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에 위치한 푸에블라시.
해방신학을 태동시켰던 남미주교회의(CELAM) 제3차회의가 79년1월 열리기도 했던 이 도시는 현재도 인디오와 가톨릭간의 비극적인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식민지시대 도시의 하나다.
푸에블라시는 우익기업가와 보수적인 가롤릭교회의 성원을 등에 업은 정당이 지배해오고 있다.

<호화성당과 대조>
원주민시장 뒷골목에 거주하는 이 도시 인디오들의 가난은 궁전과 같은 식민지시대 저택이나 장대한 가톨릭교회들과 빈부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 인디오여인이 나뭇잎 바구니에 앓고있는 아이를 뉘어놓은채 몇십원씩 받고 오이를 팔고있는 그 뒤에는 황금색으로 장식된 호화교회들이 우뚝 우뚝 솟아있다.
아직도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보수 가톨릭교회들은 식민지시대 교회의 숙명론적인 「체념의 메시지」를 인디오들에게 되풀이하면서 「가난」이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중심과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르헨티나 북부 라리오하 인디오촌의 백인숭배의식.
5백년전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 인디오를 노예로 삼아 금과 은을 채굴하고 목장일을 시키면서 가톨릭교회가 백인숭배의식을 연례행사로 벌여온 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라리오하인디오들은 찬란한 도시·교량·도로등을 건실했고 잉카문명에 견줄만한 도자기기술과 직조술을 발전시켰던 원주민들이다.
그러나 이들 인디오들은 식민지시대 이래 백인지주들에게 「일짐승」취급을 받으면서 목장의 날품팔이 노동자로 연명을 한다. 이곳 가톨릭교회는 목장주들의 이같은 인디오 탄압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의 하나다.
교회는 16세기 후반부터 백인전사의 옷을 입힌 아기예수상을 이 지방 수호성인(라리오하읍장)으로 내세워 인디오의 복종을 확인하는 연례의식을 거행, 인디오들에 대한 백인지배와 일치하는 인종주의 신앙을 심어주고 있다.

<순수성 고이간직>
의식은 현지교구주교가 인디오들이 역을 맡는 검은색의 성니콜라스상(복종의 상징)과 함께 백인 지주가 역을 맡은 아기예수상에게 세차례 무릎을 끓어 경배함으로써 백인의 인디오지배를 해마다 상징적으로 재확인한다.
아직도 인간 본래의 원초적인 「순수성」을 가장 많이 간직한 인디오들.
멕시코·페루·볼리비아·파라과이·콜롬비아 같은 중남미 국가들은 메스티조를 포함한 인디오가 인구의 70%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 인디오들의 대부분은 농업·어업·수공예· 저임금 막노동·행상·농업노예등으로 연명을 하거나 대도시 관광업소의 구정거리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주는 「관광상품화」신세다.
때로는 도시광장과 번화가에서 좌판을 벌이고 행인들의 손금을 봐주고 몇푼씩 받아서 삶을 꾸려나가기도 한다.
페루나 멕시코에 인디오가 많은 것은 식민지 총독부가 은광노동자로 일을 시키기 위해 브라질·아르헨티나에서처럼 살해하거나 추방치 않고 보호한 역사적 배경때문이다. 식민지시대 페루의 은광에서는 매년 10만명의 인디오가 혹사와 질병으로 죽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은 과리니 인디오들의 사목을 맡고있는 한 파라과이 신부의 생생한 절규다.
『백인들은 기도도 드리지않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속인다. 또한 그들은 폭력과 경멸로서 우리 인디오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 위축시킨다. 그들은 자기네 종교의 이름을 빌려 우리를 동물처럼 다룬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땅의 진정한 주인이자 위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들이다. 또한 우리는 아버지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늘나라에 우리 모두가 들어갈 자리가 있음을 알고있다.』
글 이은윤특집부장
문일현기자
사진 최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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