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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지도자' 카다피 만나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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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명숙 총리의 예방을 받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한명숙 총리가 20일 오후(현지시간) 리비아 트리폴리 지도자 궁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최고지도자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일에 싸인 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64) 리비아 최고지도자가 20일 오후 7시30분(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의 '바브아지지아'(지도자 궁)에서 한명숙 국무총리를 만났다.

국제사회는 최근 카다피와 리비아를 크게 주목하고 있다. 수십 년간 사회주의.반미 노선을 걸어오다가 2003년부터 친서방.개방정책으로 극적인 변신을 했기 때문이다.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체제보장과 경제원조를 받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을 선보인 것이다.

'리비아식 해법'으로 경제 회생

미국은 5월 리비아를 테러지원 국가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서방의 자본도 풍부한 유전을 향해 물밀 듯이 몰려들고 있다. 최근 3년간은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8.7%로 껑충 뛰었다. 한 총리와 카다피의 면담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면담 장소나 시간이 사전에 확정되지 않아서다.

지난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방문한 이와오 마쓰다 과학기술상은 갑자기 트리폴리 남쪽 603㎞에 위치한 세바로 찾아오라는 통보를 받았을 정도다.

이날 오후 7시15분 지중해변에 위치한 엘 마하리 호텔을 출발한 12대의 한국 순방단 차량이 '바브아지지아' 정문을 통과했다. 회담 장소인 접견실까지는 다섯 개의 철문을 더 통과해야 했다. 궁 안 곳곳에는 탱크와 장갑차가 눈에 띄었다.

카다피는 흰색 외벽의 단층 건물인 집무실 현관에 서 있었다. 트리폴리 시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혁명 37주년 기념 입간판에 그려진 카다피는 젊고 힘찬 모습이다. 하지만 황금색 가트(리비아 전통의상) 위에 갈색 차도르를 걸친 실제의 그는 늙고 지쳐 보였다. 카다피는 현관에서 한 총리의 손을 잡고 10초 이상 흔들었다. 최대한의 친절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집무실은 좁았지만 10여 명의 경호원이 곳곳에 서 있었다. 면 바지에 반팔 남방셔츠 차림의 건장한 경호원 서너 명은 아예 카다피를 에워싸고 있었다.

'지도자 궁' 5중 철문 곳곳 탱크

카다피는 ㄷ자 형태로 배치된 커다란 소파의 중앙에 앉았다. 한 총리는 오른쪽 소파 첫머리에, 나머지 자리에는 추병직 건교부 장관, 유명환 외교2차관, 마영삼 외교부 아중동국장, 이남수 주 리비아 대사 등이 앉았다. 리비아 측에서는 알마무디 총리와 압두사렘 마라파 주한대사 등 네 명이 배석했다.

사진과 달리 늙고 지친 표정

회담은 비공개였지만 리비아 측은 집무실의 문을 반쯤 열어 놓아 밖에서 다 보였다. 카다피는 턱을 15도 각도로 치올린 유명한 '낙타 포즈'로 앉아서 가끔씩 한 총리 쪽으로 몸을 기울여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카다피는 "북한 문제에 대해 그동안 중재 노력을 시도해 왔고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없었다"며 "다시 한번 중재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고 총리실 관계자들이 전했다.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오후 8시30분 한 총리 일행이 회담을 끝내고 궁 밖으로 나왔을 때 트리폴리 시내에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 있다가 몰려나온 차량과 인파가 강물처럼 천천히 밀려가고 있었다.

트리폴리=최현철 기자

◆ 카다피=1969년 9월 무혈혁명으로 집권한 뒤 사회주의.반미 노선을 걸어왔다. 혁명 성공 후 '민중의 친구'를 자처하면서 대령까지만 승진하고 장군이 되기를 거부했다.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미국 팬암기를 폭파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다. 미국은 카다피를 제거하려고 공습까지 했었다. 그동안 암살시도만 20여 차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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