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영광과 좌절 <4>|찌든가난 정부도 손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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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마태복음19장24절)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마태복음5장1∼10절·누가복음6장17∼26절).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한 행적과 말씀들을 담은 성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것』이라는 메시지를 앞세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연민의 정을 토로한다.
인구의 95%이상이 가톨릭인 라틴 아메리카대륙의 한스러운 「가난」을 취재하면서 이같은 성서 속의 강렬한 메시지들을 새삼 되새겨 본 곳은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시와 페루 리마시에서였다.
널리 알려진대로 세계3대 미항의 하나인 리오데자네이로에는 시교외에 노바 이과수라는 인구 1백20만명의 세계 최대 파벨라(Favela·빈민촌)와 시내 한복판의 유명한 파벨라 도나마르타가 있다.

<밥벌이에 안간힘>
리오 코로코바도산 티후카국립공원 정상에는 리오에 발을 들여놓으면 눈을 감지 않는한 우선적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거대한 예수상이 로마교황청을 향해 우뚝 서 있다.
관광명소이기도한 이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상 앞에 서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항구의 풍경들과 저 유명한 코파카바나해수욕장·이파네마해변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러나 미항의 절경들에 취했던 눈을 잠시 돌러 이파네마해변으로 이어지는 시가를 훑어보노라면 『하느님, 어찌하여 이곳을 끝내 버리시나이까』를 거듭 절규하고픈 그리스도의 구원이 절실한 도나마르타 빈민촌을 바로 눈앞에 맞게된다.
이 파벨라 바로 옆에는 좀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리오시장 관사가 빈부의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다소 한가롭게 위치해 있다.
그 아래에는 돈많은 사람들의 호화 해변 별장아파트와 소실들이 상당수 살고 있다는 산뜻한 아파트들이 이 파네마해변가로 줄지어 늘어서 1년내내 해수욕이 가능한 푸른 바다를 입질한다.
이 파벨라의 이야기를 듣고나면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다시한번 『오, 하느님』을 절규하게 된다. 살인·마약·강도·알콜중독등으로 이어지는 파벨라의 이야기는 정부당국의 법과 치안이 미치지 못한채 극악무도한 자들의 법만이 판을 치는 치외법권적 「무법지대」라는 것이다.
50여개의 판자촌이 밀집한 멕시코북부의 치와와시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빈민촌을 대표하는 노바 이과수.
전형적인 도시빈민들만이 모여사는 노바 이과수는 상수도·학교·병원시설등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 8명가족 한달 평균수입이 1백달러미만의 「기아소득」이다.
리오에 밥벌이 직장을 갖고있는 사람들은 새벽3시반 버스를 타고 7시까지 출근해 일을 마친후 돌아가는데 대체로 밤10시반이 넘어야 귀가한다.
도시빈민들의 「기아소득」은, 저임금때문이다. 다국적기업을 비롯한 대기업은 값싼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임금인상시기인 연초3, 4월동안 노동자를 해고하고 더 싼 임금의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하는 소위 「근로자 로테이션정책」이란 것을 되풀이한다.
브라질에는 4천만명에 이르는 값싼 도시빈민·노동자들이 충분히 있다. 이같은 기업들의 횡포에 노동자들의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부족이다. 상파울루 포드자동차의 경우 86년 무장경찰을 동원, 해고에 저항하는 1천5백명의 노동자를 강제 퇴거시켰다.
또 노바 이과수의 빈민들은 「기아소득」중에서도 빈민가를 주름잡는 깡패들에게 텃세를 내야 한다.

<하루 한끼로 때워>
이곳에서는 인간의 생명이라는게 별 값어치가 없다. 70년대 후반의 통계를 보면 주 평균 l7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무법천지」다.
살인사건이 빈번해도 경찰은 나타나지를 않는다. 정부는 사실상 이 파벨라의 마약밀매자들이나 금품갈취자들을 제거할 힘도 의사도 없다는게 노바 이과수를 잘 아는 많은 사람들의 솔직한 시각이다. 그래도 이 파벨라와 접촉할수 있는 외부사람이 있다면 이 지역의 사목에 몸을 던진 몇몇 가톨릭 성직자들뿐이다.
브라질의 경우 현재 3천만명의 빈민들이 가난의 한을 등에 짊어진채 엄청난 인간적 비참 속에서 이곳저곳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도시빈민은 주로 농촌에서 도시로 밀려드는 페옹(농업노동자)·포세이로(무단경작자)·콜로노(소작농)등이 주류를 이룬다.
리오데자네이로에 특히 도시빈민이 많은것은 농촌지역인 북동부에 가까운 대도시라는 지리적 여건과 한때 이 지역의 주지사를 한 사회주의자 브리 졸라(지난해말 대통령선거 후보이기도 했다)가 『빈민은 시의 주인이다』고 외치며 빈민들을 자신의 정치이념 지지기반으로 활용하려했던 것도 그 원인의 하나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빈민촌의 힐다씨(46).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5km지점의 늪지대 아베야네다판자촌에 사는 힐다씨는 5명의 자녀를 거느린 과부다. 『일을 많이 하고 싶지만 일거리가 있어야지요.』
파출부로 가정집 청소를 하루 3∼4시간씩 해주고 일당 1천5백아우스트랄(한화 3백50원)정도를 받아 연명한다는 그는 『전가족이 점심 아니면 저녁 한끼로 끼니를 때운다』면서 『하루 품삯이 설탕 1kg값(2천아우스트랄)도 안된다』는 푸념을 덧붙였다. 『정부로부터 빈민자구호 무료급식권을 단 한번 받아보았는데 그후로는 소식이 없고 다른 보조도 전혀 없어요. 오히려 인근 성당에서 옷가지나 식량을 지원해줘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대신 1주일에 한번씩 성당에 가 청소를 해주지요.』
힐다씨는 이같은 곤궁한 생계의 유일한 보조수단으로 닭과 거위를 길러 그 알들을 「영양식」으로 먹는다.

<위생도 원시적>
이 늪지대에는 6가구의 빈민들이 살고 있는데 화장실이나 침실등의 위생은 한마디로 원시적인 상태다.
힐다씨는 『파출부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져 일감이 많질 않다』고 긴 한숨을 거듭 내쉬다 취재진이 과일이나 사먹으라고 건네주는 몇달러의 조그만 성의를 고맙게 받고는 냇가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 전송해주었다.
라틴아메리카대륙의 찌든 가난을 극명하게 드러내보이는 대소의 도시빈민촌은 모두 2만여개로 추계되고 있다.
물론 빈민촌이나 빈부의 차라는게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세계 부국임을 자랑하는 미국의 뉴욕에도 유명한 할렘가라는 빈민촌이 있고 우리 서울에도 적지않은 수의 달동네들이 있다.
그러나 유리창으로 번쩍이는 고층건물 바로 너머에 좌절한 민중들이 펼쳐놓은 라틴아메리카의 빈민촌들은 정부의 공권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무법적인 사회」를 이루면서 흉악한 폭력을 길러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빈민촌들은 이제 『정치적 혁명으로 폭발하리라』던 지난 70년대의 우려와는 반대로 정의가 아닌 물질적 소득이나 적대적인 녹수를 추구하는 폭력화경향을 보인다.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와 상파울루에는 빈민촌과는 다른 또하나의 가난을 드러내 보이는 사생아출신 부랑아(거지)들이 적지않다.
천주교 상파울루교구 주교좌성당이며 해방신학의 실천적 지주인 에바리스토 아른스추기경이 착좌하고 있는 세성당앞의 세광장 분수대.
각종 데모와 집회의 메카며 약장사·거리의 악사·기독교선교사등이 널리 이용하는 이 광장의 분수대는 한낮인데도 부랑아들의 목욕탕과 빨래터로 이용되는 진풍경을 보여준다.
브라질의 도시빈민 증가는 경제개발 모델 선택에서 컴퓨터·TV와 같은 고도의 정밀기술산업 모델을 선택하고 노동집약산업을 도외시함으로써 고용증가를 가져올수 있는 진정한 「개발의 희망」을 꺾어버린데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개발은 시민적 발전의 가능성이 희박한 실패를 낳았고 정치적 사막위에 「빈곤의 문화」를 더욱 확대시키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글 이은윤특집부장
문일현기자
사진 최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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