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리 4ㆍ19묘역/『그날의 함성』 살아 숨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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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민주의 꽃” 영령들 넋찾아 인파물결/유족들 유택서 “침묵의 향”피워
30돌 4ㆍ19. 서울 수유동 4ㆍ19묘역은 30년전 그날역사와 민족의 앞길에 불의를 걷어내자며 정의의 횃불을 높이 쳐들고 암울했던 시대상황을 밝히다 쓰러진 영령들의 함성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이날 1만여평규모의 영령 유택에는 이른 아침부터 독재에 항거하다 꽃다운 젊음을 바친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어슴푸레 동트는 오전5시 문복녀할머니(77ㆍ서울신창동)는 가족들과 함께 4ㆍ19당시 27세의 대학생으로 경무대앞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큰아들 김창필씨의 무덤을 찾았다.
문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이상 독재를 참을수 없다며 거리로 뛰어나가던 아들의 모습이 새로워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가족들은 대부분 서너명씩 가족단위로 찾아와 무덤주위를 정리하고 향을 사르며 조용히 앉아 있다 되돌아갔다.
그러나 오전7시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등 민자당관계자들을 시작으로 오전8시 김대중 평민당총재일행,오전9시 이기택의원등 가칭 민주당소속인사등 정치인들이 나타나면서 묘소는 금세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사진과 비디오로 찍었고 기념식수를 한뒤 묘소관리인에게 금일봉을 전달하는등 연례행사를 마치고 돌아갔고 오전10시가 넘자 4ㆍ19묘역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참배객들을 제외하고 언제그랬나싶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이곳 묘역을 찾는다는 유용상씨(73ㆍ서예가ㆍ서울수유동)는 『스스로 4ㆍ19의 적자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여당과 야당으로 갈려 헌화마저 따로 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4ㆍ19 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며 『해마다 그 의미가 「행사」로만 정착하는 것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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