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생활 개선|정책토론 허용|반관료주의운동|"인민의견 수렴" 개혁몸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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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련및 동유럽을 휩쓴 개혁열풍에 곤혹스러워했던 북한이 최근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그 실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산당 1당독재폐지등 소련과 동유럽국가들이 추진한 개혁에 그동안 북한권력층은 큰 부담을 느껴온게 사실이다. 특히 소련이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는다는 단계에까지 온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수 없다.
북한은 그동안 동구권에서 어떤 사대가 전개될 때마다 대응책을 제시하곤 했었으나 그 내용은 일관성이 없고 임기응변적인 성격이 강했었다.
단적인 예로 폴란드가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자 『폴란드는 앞으로 쓴맛을 볼것』이라고 했으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몰락했을 때는 『루마니아 인민들의 결정사항』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소련이 대한수교의사까지 비추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자 이제는 대세를 역류시킬수 없는 사태에 이른 것으로 보고 나름대로의 대응책을 수립한 것같다.
우선 대외적인 면에서 눈에 띄는 점은 「대소관계의 재정립」움직임이다.
대한 접근책을 쓰고있는 소련에 북한은 북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을 주지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의 방소를 둘러싼 북한의 반응에서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김최고위원의 방소기간과 그후 10일간 침묵을 지켰었다.
그러나 지난6일 로동신문 사설을 통해 소련에 대한 비난포문을 연후 10일에는 한국민족민주전선(북한은 이를 남한의 친북계 망명단체라고 주장)성명을 통해 소련을 더욱 격렬히 성토했다.
이 성명은 김최고위원을 비난하면서 『소련같이 존엄한 사회주의국가가 남조선과 외교관계수립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갖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수 없는 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북측은 또 『소련같은 강대국이 외채에 의존하고 있는 남조선에 손을 내미는 것은 더 더욱 상상할수 없는 일』이라고 비꼬았다.
북한의 이같은 반응은 김최고위원을 비난하고 한국민족민주전선을 인용하는등 주로 간접적인 방식을 택함으로써 「정면도전」의 인상은 피했지만 『할 얘기는 다하겠다』는 의지표시로 볼수 있다.
이에대해 소련도 북한은 김일성의 개인박물관이라든지,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출신이라는 등으로 응수하고 있다.
이같이 북한-소련관계가 냉랭해지고 있지만 양국은 서로를 막다른 골목으로까지는 몰고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양국이 전략적인 관점에서 상대방을 완전히 버릴수 없기 때문이다.
즉 소련으로서는 북한이 중국쪽으로 철저하게 돌아가지않는 범위내에서 북한을 조정할 것이고, 북한으로서도 군사적 측면에서 소련을 무시할수 없는 촉면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같이 대소관계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대중국유대강화, 대서방관계개선으로 일단 방향을 잡은 것같다.
대내정책측면에서 북한은 사회주의체제 고수라는 기본정책에서는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하고 있다.
김일성생일인 15일자 로동신문은 『북한은 앞으로도 인민이 선택한 고유의 사회주의를 고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이 북한은 당분간 김일성을 정점으로한 사회주의건설로 매진하면서 그대신 정책토론허용·인민생활개선·반관료주의운동등 나름대로 「개혁」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선 수령론의 변화가 주목된다.
전형적인 수령론은 수령이 당을 통해 인민을 지도한다는 것으로 「위에서부터의 지시」 가 강조됐으나 최근에는 「인민의 의사를 수렴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일고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교포에 따르면 외부정보와 정책에 대해 자유롭고 폭넓은 토론이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반관료주의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북은 이 운동을 통해 각급단위의 간부들은 명령·지시일변도에서 벗어나 인민들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에 의거해 사업을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있다. 기업의 관리권도 점차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있다.
앞으로 북한이 「우리식대로 살자」는 원칙을 기본적으로 고수할 것이지만 외적변화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을수 없어 나름대로의 변신을 서서히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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