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풍쇄신 내세워 기선잡기/김영삼위원 2단계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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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무복귀ㆍ청와대 관계 정상화에 주력/민정계선 중진결속 김위원독주 제동
민자당의 내분이 표면적으로 일단 가라앉았으나 각 계파간에 후유증 수습과 사후대책이 한창이다.
○…박철언정무장관을 정치전면에서 밀어낸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은 당무일선의 복귀를 위해 여러가지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김최고위원으로선 박장관에 대해 판정승을 거뒀지만 당을 정상화시키고 박장관과의 대결에서 명분으로 사용한 당풍쇄신ㆍ개혁추구의 구체적 면모를 보여줘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계파간의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그의 구상이 어느 수준까지 구체화될지 미지수이지만 우선 청와대와의 관계정상화에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당정운영에 있어 박장관의 독점적 역할을 깨지 않고선 민자당의 결속,이미지 개선이 어렵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당의 역할과 위상을 높이려는데 주력하고 있다.
17일 청와대회동에서 김최고위원은 국정운영에 있어 당의 확고한 위치에 대한 해답을 노대통령으로부터 얻어내려 할 것이며 박장관 1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정상적인 당운영 스타일로의 변화를 위한 개선안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엔 박장관의 후퇴에 따른 여권내 질서변화의 흐름을 선도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는 이러한 당쇄신을 그가 외쳐왔던 공작정치문제에서부터 풀어갈 생각이다. 안기부의 여권내 위상조정 요구가 현실화 될 경우 여권내에서 그의 역할이 실증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최고위원이 파악하기론 박장관이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안기부가 제공하는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이를 활용해 영향력을 확산해 왔다는 것.
그러나 김최고위원은 공작정치문제를 밖으로 크게 떠들기 보다는 안기부측의 해명과 재발방지보장이 있을경우 더이상 문제삼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대신 안기부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적정수준의 제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길게 끌고가면 김최고위원 자신이 이를 구체적으로 공개해야만 하는 부담이 따르고 이미 야당의 공격표적이 돼 있기 때문에 내부문제로 축소하려는 인상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의 최종 종결점은 당의 지도체제와 연결될 수 밖에 없어 김최고위원의 이에 대한 복안이 관심을 끌고 있다.
당초 박장관의 의원직 사퇴까지 요구했던 김최고위원측이 장관직 사퇴선에서 수습하는데 동의한 것은 당기강 확립을 위한 실질적인 당운영권을 할애받기 위한 의도로 읽혀졌다.
김최고의원측은 박장관 발언같은 당기문란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선 당무를 실질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하며 당인사권 등에도 일정 단계까지 권한이 할당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민정계는 민주계의 도전으로 박철언정무장관을 사퇴시킨데다 민주계가 당권장악 기도를 가시화해 가고 있다고 보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박장관의 사퇴를 계기로 외형적 양보를 함으로써 일단 합당이후 형성된 오만하다는 비판여론을 희석시켰다고 보고 통치권에 대한 더 이상의 훼손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생각들이 강하다.
따라서 민주계가 내심 목표로 삼고 있는 당지도체제는 최고위원간에 이미 합의된 것을 그대로 반영해 대통령이 당총재로서 당을 통할,대표하고 그 밑에 대표최고위원을 맡을 김영삼최고위원이 위임된 당무를 관장한다는 형식을 고수할 방침이다. 또 김최고위원의 독주를 막기 위해 최고위원 합의제를 강조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17일 청와대회동이 끝나는 대로 당3역이 당헌개정작업에 착수하고 전당대회에서 채택할 계획.
이와함께 민정계로선 그동안 청와대와 당을 연결하며 사실상 당무를 주도,민정계를 이끌어 온 박장관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도 시급한 과제다.
민정계는 이를 계기로 당내 주류ㆍ비주류로 구분돼 소외감을 느껴온 당중진들의 결속을 다질 계획.
민정계 중진들은 박태준대행을 중심으로 게파결속을 다지기로 했으며 이에따라 김윤환 전총무를 정무장관으로 기용,TK세력과 당내 융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직개편을 고려치 않는등 박장관 체제는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박장관의 재기용이 예상돼 민정­민주계간의 제2회전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김영삼최고위원의 구상대로 당이 움직여 갈지는 의문이다. 당장 김최고위원의 문제제기 방식,박장관과의 갈등에서 보여줬던 여론동원 스타일에 대해 민정계측은 심정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공화계 역시 민주계의 위상강화를 경계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대통령과의 예상되는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그의 주장과 복안이 어느정도 설득력을 발휘할지도 문제다. 김최고위원측이 당의 단합을 다시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번 사태가 「노­김」의 대결로 투영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나 청와대측 기류는 그렇게 호의적이 아니다.
김영삼최고위원이 주장하는 개혁도 결국 당권장악문제로 나타난다면 다른 계파가 호락호락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대외적으로 당의 개혁노선을 과시할 수 있는 정책기획물도 마땅한 것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번 내분에서 조정역을 수행했던 김종필최고위원도 그전처럼 뒷전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을 것 같으며 민정계도 김영삼최고위원의 독주에 김종필최고위원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아 3계파간의 미묘한 세력갈등은 여전히 막후의 관심으로 남을 전망이다.<박보균ㆍ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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