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LA 디즈니 콘서트홀 개관] 鐵로 빚은 '뮤직 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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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은빛 돛대를 달고 태평양으로 떠나는 쾌속 범선인가, 아니면 미국 서부의 문예부흥을 꿈꾸는 '음악의 꽃다발'인가. 비평가들은 "미다스의 손이 철판을 주물러 만들어낸 것 같은 '대형 조각작품'이 미국 LA의 도심 한복판에 들어섰다"고 적고 있다.

23일 미국 LA에선 디즈니 콘서트홀(이하 디즈니홀)의 완공과 곁들어진 개막 공연이 열린다.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하는 LA 필하모닉과 LA 매스터코랄이 연주하는 '성조기여 영원하라', 리게티의'영원한 빛', 스트라빈스키의'봄의 제전'으로 꾸며지는 갈라 콘서트(지휘 에사 페카 살로넨)로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는 것.

일찍부터 LA의 랜드마크로 점쳐온 디즈니홀은 엄숙하지만 개성 없는 스카이 라인에 요란하게 등장한 '훌라 댄서'같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으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74)의 파격적인 건축 디자인 때문이다. 곡선으로 휘어놓은 82장의 티타늄 패널과 스테인리스 스틸이 빚어낸 특이한 외관 때문에 설계비만 5천만달러(약 6백50억원)가 들었다.

객석수는 2천2백65석. 포도밭 스타일의 객석 배치도 그렇지만 공연장 내부 구조를 먼저 설계한 후 외부 디자인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베를린 필하모니홀을 떠올리게 한다. 완만한 곡선으로 꾸민 발코니석은 '음악 항해'를 떠나는 한 척의 배처럼 느껴진다.

프랭크 게리는 디즈니홀을 가리켜 "온갖 소음에 찌든 귀를 말끔히 씻고 휴식을 취하는 '소리의 온천'"이라고 말한다. 음향설계는 도쿄 산토리홀.삿포로 콘서트홀로 유명한 일본 나가타(永田)음향의 도요타 야스히사가 맡았다.

디즈니홀은 1987년 월트 디즈니(1901~66)의 미망인 릴리언 여사(1899~1997)가 남편의 뜻에 따라 콘서트홀을 지어달라고 LA시에 기부한 5천만달러(약 6백50억원)가 발단이 됐다.

이듬해 프랭크 게리가 건축가로 선정됐고 91년 최종 설계안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공개되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건축 디자인에다 불경기, 92년 로드니 킹 사건(LA 흑인폭동 사건)이 겹쳐 99년 12월에야 착공됐다. 디즈니 재단의 기부금은 1억달러(약 1천3백억원)로 늘어났고 월트 디즈니사에서도 2천5백만달러(약 3백25억원)를 내놓았다. 총건축비는 2억7천4백만달러(약 3천5백62억원).

디즈니홀의 소유주는 LA시 산하 뮤직센터이지만 실제 사용자인 LA필이 운영권을 넘겨 받았다. LA필은 올해 가을 시즌부터 디즈니홀로 무대를 옮기면서 연간 공연회수도 90회에서 1백50회로 늘렸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재즈 시리즈도 신설했다. 64년부터 40년간 상주해온 길건너 편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3천86석)에 비해 객석수가 줄어들어 입장권은 좀 비싸졌지만 부유층들을 위한 박스석을 만들지 않았다.

최근 20년간 문을 연 콘서트홀과 차별하기 위해 위압감을 주는 샹들리에를 없앴다. 오렌지.빨강.진홍색으로 된 잎사귀 모양의 카펫과 객석 의자의 쿠션은 열대 온실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목재와 유리로 마감한 로비도 시민들이 거실처럼 편안하게 나들이할 수 있는 곳으로 꾸몄다.

디즈니홀은 인근 LA 중앙도서관.LA 현대미술관(MoCA) 등과 함께 거대한 문화단지를 형성한다. 지하에는 주변 오피스타운의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95년 개장한 7층 규모의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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