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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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믿기 어렵다. 예수의 부활도 마찬가지다. 그런 논란은 성서시대 이후 계속 되어 왔다.
예수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빈 무덤」도 유대인의 풍습과 관련지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들은 무덤에서 유골을 거두어 보관해 두는 관습이 있었다. 신의 마지막 심판때 유골이 있어야 다시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떤 성서학자는 「졸도」설도 주장한다.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그 고통에 못이겨 정신을 잃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학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부활을 극적으로 꾸며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물론 반론도 당당하다. 「빈 무덤」설은 성서기록엔 무덤 앞에 파수병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유대인이라도 예수의 사신을 몰래 옮겨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졸도」설 역시 믿기 어렵다. 예수가 설령 나중에 무덤에서 정신이 깨어났다고 해도 그 기력으로 어떻게 무덤을 막은 바위덩어리를 움직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일설에는 예수의 무덤을 잘못 찾아간 여인들이 남의 빈 무덤을 보고 예수부활로 착각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성서에는 요한과 베드로도 빈 무덤을 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부활한 예수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얘기다. 그런 기록은 성서에 열번이나 나온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증거보다는 신앙의 문제다. 신자들이 그것을 믿으면 그보다 더 강한 증거는 없다. 진보적 신학자중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해도 그는 신의 형상으로 인간의 마음과 정신속에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15일 일요일은 예수 부활절이다. 서양에선 크리스마스 보다도 이 날을 더 큰 축일로 지낸다. 예수의 부활을 믿고 안믿고는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의지에 맡길 일이다. 그러나 신자가 아니라도 그 의미는 음미해 볼 수 있다.
예수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지극히 작은 자」 한사람에게 잘 한 것이 바로 자신에게 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란 굶주린 사람,목마른 사람,집없는 사람,헐벗은 사람,병든 사람,옥에 갇힌 사람을 지칭했다. 「신과 나」와의 수식적인 신앙보다 그는 「나와 이웃」의 수평적인 신앙을 원했다. 예수의 부활은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교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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