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서용빈 '고인이 된 친구 몫까지 다 못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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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용빈(35.LG)이 떠난다. 수려한 외모와 조각 같은 몸, 그리고 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스윙으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다. 서용빈은 19일 팀 선배 김정민(36)과 함께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들은 24일 잠실 두산전을 공식 은퇴경기로 치른다. 그 뒤에는 팀에서 마련한 코칭스태프 육성 프로그램에 따라 국내 1년,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 1년 등 2년간 지도자 수업을 받는다.

서용빈은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가 데뷔한 1994년, LG는 절정의 인기와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도 잠실구장 2층 귀빈실 뒤쪽에는 우승을 결정 짓던 순간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사진 속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서용빈, 유지현(LG 코치), 이종열(LG)의 모습을 팬들은 LG 전성기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서용빈은 화려한 스타지만 많은 굴곡의 시간을 보냈다. 한창 기량을 발휘할 때 병역 비리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고, 출소한 뒤 군에 입대했다. 제대한 뒤 현역에 복귀했지만 이미 전성기가 지난 뒤였다. 그는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에 아내(탤런트 유혜정)를 만나 사랑을 확인했고 가정을 이뤘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은퇴를 놓고) 많이 고민했고, 많이 상의했다. 누구보다 아내가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친구의 이름을 꺼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혁(전 LG)이었다. 박정혁은 휘문고 시절 '미래의 거포'로 이름을 날렸던 유망주였다. 89년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 공주고와의 3회전에서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때리며 이름을 알렸다. 서용빈(당시 선린상고)과 박정혁은 학교는 달랐지만 마음이 맞았고, 진한 우정을 쌓았다.

둘은 LG에 같이 입단했지만 서용빈이 신데렐라처럼 스타로 떠오른 데 비해 박정혁은 허리 부상으로 2군에 머물다 유니폼을 벗었다.

2000년 겨울, 박정혁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때 서용빈은 법정과 감옥을 오가며 힘들 때였다. 그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오열했고, 꼭 그라운드에 복귀해 친구 몫까지 뛰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서용빈은 "신인 때처럼 활기 있는 모습을 다시 보여 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 그러나 지도자로서 새로운 시작이다. 고인이 된 친구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는 모습이 무엇인지 또 한번 찾아보겠다"고 했다.

아내와 친구. 서용빈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대며 "그들은 늘 이 안에 있다"고 말했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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