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심중」에 달렸다/갈수록 뒤틀리는 「박철언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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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성들것” “후퇴할것” 엇갈려/YS는 측근통해 “전부 아니면 전무”/민정계 “퇴진은 곤란”…JP 진퇴양난
김영삼ㆍ김종필 두 최고위원의 전격회동에 이어 13일 새벽엔 김종필최고위원이 다시 박태준민자당최고위원대행을 극비리에 만나는등 박철언파동으로 인한 민자당내분 수습을 위해 고위접촉이 연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수습책은 아직 묘연하다.
○…12일 김영삼최고위원과 4시간30분에 걸친 마라톤회담을 하고난 김종필최고위원은 『민정ㆍ민주계 모두 계보모임이나 상대측을 자극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이에따라 김영삼최고위원은 13일 측근들과 만나지 않는등 약속을 지키며 김종필최고위원의 해결노력을 일단 관망.
JP가 13일새벽 박태준대행과 만나 어느수준에서 수습책을 협의했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박장관의 문책수준에서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느낌.
12일 YS­JP회담이나 13일 새벽회담에서 주로 거론된 문제점들을 보면 ▲박장관 발언중 『공개하면 정치생명 끝장난다』는 이른바 합당과정의 비사에 대한 해명방법 ▲김영삼최고위원이 주장한 공작ㆍ정보정치 ▲문제 발언을 한 박장관 처리방법등….
12일 회동에서 JP는 YS에게 박장관처리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안을 만들어 가자고 설득했으나 YS의 입장은 상당히 완강했다는 것.
JP 측근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JP는 YS와 박장관 사이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집중되고 있다.
JP는 YS가 강조하는 「위계질서」를 수긍하면서도 박장관이 당료이기보다 각료이며 이점에서 박장관이 당에서 갖고있는 역할의 축소는 있을지라도 임면에 관한 문제는 대통령에게 일임해야 한다는 주장.
즉 대통령의 권한에 고리를 걸고 나설경우 대통령까지 싸움에 끼어들어 문제가 더욱 어렵게 된다는 점을 김영삼씨에게 강조한것 같다.
당초 JP의 복안은 박장관이 모든 당무를 최고위원에게 보고되도록 하고 박장관이 직접 YS에게 사과케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YS의 입장이 원체 완강해 JP는 박태준대행에게 최소한 발언을 문책하는 가시적인 모습은 어느정도 보여야 한다는 점을 통고한 것같다.
이에 박대행은 박장관이 김영삼씨에게 직접 사과하면 어떻겠느냐는 기존방법을 제시했을뿐 다른 대안은 내지 못했다.
박대행은 JP로부터 전해들은 YS의 생각과 JP가 내놓은 수습방안을 가지고 청와대측이나 민정계,당사자인 박장관과도 협의했으나 민정계쪽에서 「유감표시」수준 이상의 해결책을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조기해결은 어려울 전망.
당초 JP측은 YS와 회담이 잘되면 박대행과 적절한 수습책을 마련하고 늦어도 주말까지는 수습한다는 스케줄을 갖고 있었으나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조기진화가 어려운 상태.
이 바람에 해결사로 나선 JP가 오히려 김영삼­박철언사이에서 진퇴유곡의 입장이될 가능성도 있다.
○…김최고위원의 요구사항중 강한 의지를 담고있는 대목은 소위 「공작정치」와 관련한 안기부의 역할해명과 재발방지 보장,고급정보의 공유다.
상도동의 정치자금 압박설과 후원인사 차단설,접촉인사와의 면담내용추적설등 그가 문제삼고 있는 대목으로 알려진것에 대해 김종필최고위원은 서동권안기부장으로부터 일단 직접 설명과 보고를 들은뒤 후속조치를 취할것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도 김영삼최고위원이 심하게 자존심을 상했다고 느끼고 있어 입장변화엔 시간이 걸릴듯하다.
이와관련해 민정계는 민주계와의 막후절충에서 접촉인사를 확인하는 것은 일상적인 안기부의 업무이며,자금압박설에 대해선 『일단 여권내에 들어온 이상 자금줄을 마련하게 하기보다는 공동조달방법으로 당비를 써야할 것』이라고 냉소적이다.
고급정보의 공유요구는 박장관 발언같은 민정계쪽의 도전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선 정보독점이 있어선 안된다는 의도로 절충점의 하나가 될수있을지 관심가는 대목이다.
○…12일 김종필최고위원과 회담을 가진 김영삼최고위원의 입장은 여전히 직선적이며 신축성이 없어 워커힐회동후 보다 원론적인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김영삼최고위원은 13일 오전11시 상도동자택에서 박준병총장ㆍ김동영총무ㆍ김용환정책의장의 방문을 받고 30여분간 당내분 사태 해결방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
그러나 김최고위원의 입장이 워낙 완강했던 탓인지 박총장은 나가면서 『아무할 얘기가 없다』고만 언급.
이에앞서 김최고위원을 만나고 나온 황병태의원은 『YS는 정치적인 해결을 하는데 비해 JP는 당의 이해조정문제로 파악해 사실상 JP의 중재노력은 기대할 수 없게됐다』며 『YS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사태의 장기화를 우려.
상도동의 한 측근은 『3당통합을 야합으로 변질시킨데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선 내분수습이 어렵다는것』이며 『바로 그것이 박장관의 퇴진을 의미하는것』이라고 설명.
○…청와대에서조차 사태해결에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하는데 문제의 핵심이되는 「박장관의 거취」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이 다른데 기인하고 있다.
낙관을 전망하는 쪽은 『노대통령도 이번만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으며 이번 일로 매우 심기가 불편해져 있다』면서 어떤 식이든 박장관의 거취에 대한 결심을 하리라고 믿고 있으며 이런 결심이 선다면 김최고위원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예측하기 때문.
이들은 노대통령이 당장 박장관을 인사조치하거나 문책은 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있을 당직개편이나 5월 국회직개편에 자연스럽게 박장관을 교체하는 방법으로 사태해결을 하리라 보고 있다.
따라서 전당대회후 당직개편때 박장관과 동일 티킷인 박준병사무총장을 경질하고 박장관을 일단 후선으로 물리는 쪽으로 하되 모양을 생각해서 김최고위원이 현단계에서 『이문제는 노대통령이 적절히 처리한다』는 식으로 상호타협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쪽에서는 노대통령이 이같은 결심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으로 보며 당분간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둘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노대통령은 박장관의 발언파동후 박장관으로부터 해명 전화를 받고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느냐』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을 한데 대해서만 꾸중을 했지 박장관의 행위 그 자체는 이해할수 있는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즉 노대통령은 『민자당내에서 그래도 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박장관뿐』이라고 믿고 있으며 오히려 김영삼최고위원의 행동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노대통령은 박장관을 후선으로 물리지 않을 뜻이 확실하며 민자당의 내분도 당분간은 지켜본다는 입장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노대통령은 11일 민정계중진들을 불러모아 『박장관을 도와주라』는 의미의 얘기를 한것이나 최근 일부장관을 통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같은 부탁을 했던 점등으로 보아 이것이 노대통령의 진심일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생각이 이렇다고 할 경우 민주계에서도 쉽게 청와대 회동에 응할수 없어 해결이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문창극ㆍ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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