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크 대량 학살범에 유네스코 공로상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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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최근 이슬람 카리모프(68.사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에게 특별공로상을 준 것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권단체들이 "대량학살극의 주범으로 지탄받고 있는 독재자에게 공로상이 웬 말이냐"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이달 8일 카리모프 대통령에게 "국가 간 우호협력 강화, 문화적.종교적 대화 증진,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을 지지한 점을 높이 샀다"며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 '티무르의 무덤 등 옛소련 치하에서 거의 방치됐던 세계적 문화유산들을 적극 복원한 점이 인정된다'는 게 선정 이유다.

그러자 국제 인권단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 프리덤 하우스와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유수의 인권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프리덤 하우스의 알렉산더 구프맨 국장은 '라디오 프리 유럽'과의 인터뷰에서 "유엔이 누가 봐도 명백한 독재자인 카리모프 대통령에게 공로상을 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그는 민간인 대량 학살의 주범이자 고문과 인권 유린으로 악명 높은 독재정권의 최고 통치자"라고 말했다.

HRW의 한 관계자도 "우리 모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며 "문화유산 몇 곳을 보존한 게 독재자의 인권 유린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의 핵심은 지난해 5월 발생한 '안디잔 학살'. 당시 우즈베키스탄 동부의 안디잔 주민들은 민주화를 외치며 연일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정부군이 강제진압을 벌이는 과정에서 시위대에 발포, 많은 사상자를 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최소 173명이 숨졌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각종 사진자료와 증언을 통해 "최소한 500명 이상 숨졌으며, 이는 정부군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무차별 총격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더 나아가 인권단체들은 카리모프의 문화유산 복원작업에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한 관계자는 "티무르의 무덤 복원사업 때문에 수천 명의 주민이 빈민촌으로 강제 이주해야만 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유네스코 측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인권단체들은 수상 반대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기로 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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