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완당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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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
바람이 세다
산방산 너머로 바다가
몸을 틀며 기어오르고 있다
볕살이 잦아지는 들녘에
유채 물감으로 번지는
해묵은 슬픔
어둠보다 깊은 고요를 깔고
노인은 북천을 향해 눈을 감는다
가시울타리의 세월이
저만치서 쓰러진다
바다가 불을 켠다.
2
노인은 눈을 뜬다
낙뇌처럼 타버린 빈 몸
한 자루의 붓이 되어
송백의 푸른 뜻을 세운다
이 갈필의 울음을
큰 선비의 높은 꾸짖음을
산인들 어찌 가릴 수 있으랴
신의 손길이 와 닿은듯
나무들이 일어서고
대정 앞 바다의 물살로도
다 받아낼 수 없는
귀를 밝히는 소리가
빛으로 끓어 넘친다
노인의 눈빛이
새 잎으로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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