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10년, 강릉 잠수함 침투 현장 "안보 불감증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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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빗줄기가 간간이 뿌린 17일 오후 강원도 강동면 안인진리 통일공원. 휴일임에도 300여 명의 관광객이 찾았을 뿐 한산했다. 10년 전인 1996년 9월 18일 북한 잠수함이 침투, 50여 일간 국군과 무장공비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시발점이 됐던 곳임에도 관광객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했다.

뱃머리가 바다 쪽으로 향해 좌초했던 당시와 달리 '북한 잠수함'은 해안선과 평행선으로 전시돼 있다. 잠수함 내부에 들어서니 온통 검게 그을려 있다. 잠수함이 좌초하는 순간 군사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불을 냈다는 것이다.

길이 35m, 폭 3.5m 의 잠수함 내.외부를 둘러보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근 안보전시관에는 당시 작전에서 노획한 소총과 권총, 각종 장비 등 120여 점이 전시됐있다.

관광객 송영희(63.여.부산 동래구 사직3동)씨는"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잠수함을 보니 당시 상황이 떠올라 섬뜩하다"며 " 남북 화해가 조성됐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릉 통일공원에 전시된 북한 잠수함과 우리 해군의 퇴역한 전북함. 잠수함이 전시된 곳은 10년 전 좌초된 지점이다.

통일공원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인 강동면 임곡1리 청학산 중턱. 산악 탈출 훈련을 받지않아 도주하는데 방해되자 동료에게 사살된 11명의 북한 승조원 시체가 발견된 곳이다. 18일 아침 수십발의 총소리를 듣고 군부대로 달려가 신고했다는 박종근(76)씨는 "송이를 따러 다니면서 해마다 그곳을 지나지만 싸리나무 등이 많이 자라 지금은 정확한 위치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동면 언별리 단경골 입구는 9월 19일 최초로 교전이 벌어져 국군이 공비 3명을 사살한 곳이다.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한 장교가 99년 개인적으로 세운 높이 2.4m, 폭 1.2m 크기의 '96년 단경골 대간첩작전기념비'가 있다.

이밖에 11월 5일 마지막으로 교전을 벌여 공비 2명을 사살했지만 국군도 3명이 사망한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98년 '연화동전적비'가, 강릉 정동진에는 2000년 6월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졌다.

◇당시 사람들=택시 기사로 96년 9월18일 오전 1시35분 잠수함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이진규(47)씨는 강릉에서 식당 주인으로 변신했다. 정부와 강릉시로부터 신고포상금 등 9000여만원과 개인택시면허.포텐샤택시를 받은 이 씨는 운전을 계속하다 5년 전 전업했다. 이 씨는 "통일공원에 안보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 잠수함 승선자 26명 가운데 유일하게 생포된 이광수씨는 현재 해군 군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씨는 잠수함 침투 10년을 앞둔 14일 동해지역 군부대 등에서 강연을 했다. 이 씨는 지금도 자신을 체포한 경찰관과 가끔 연락하고 지낸다.

◇추모 행사= 당시 작전에 참가해 전과를 올리거나 희생자가 발생한 공수부대 등에서는 전적비와 추모비 등을 세우고 현충일에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대공 관련 합동심문조는 해마다 무장공비 도주로를 답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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