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치레 일변도의 「공직자 덕목」/구조적 병폐척결이 본질이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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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또 한차례 공직자 새 정신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미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할 6대덕목과 각 부처에서 자율추진해 나갈 4대과제,14개 세목을 정해 각 부처에 시달했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야할 6대덕목 가운데는 각종 경조사에 화환보내기 자제,고급유흥업소 출입을 삼갈것,지하철ㆍ버스 타보기등 서민과 함께하는 생활실천,헌혈운동참여와 불우이웃돕기,인사 이권청탁 안받기,과도한 접대행위 자제등이 포함돼 있는 모양이다.
일반공무원들이 지켜야할 세부 실천사항에는 산하단체에 대한 고압자세지양과 상경하애예절,각종 행사 시간엄수,출ㆍ퇴근후 불필요한 잔류지양,법정년가 시행,일과시간중 개인용무 자제등 여러가지 행동준칙이 망라돼 있다 한다.
우리는 우선 정부가 공직자들의 정신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바로잡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공직자사회의 기강 해이와 무사안일ㆍ편의주의가 한계에 달해 더 이상 이를 방치하여서는 내부의 상호불신과 위계질서의 문란,무책임성등으로 온전한 국정운영조차 어려워지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의구심을 주어왔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공직자들의 비리ㆍ탈법사건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는 것을 보며 공무원사회의 무책임ㆍ무질서ㆍ도덕적 타락이 어느 수준에 와있는가를 생생하게 보고 있다.
가짜 의약품으로 폭리를 취하고,종합병원이 응급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며,공해업소들이 버젓이 영업을 하는등 이 사회에 팽배하는 위법 비리의 근원은 물론 사회 전체의 윤리적 지주의 붕괴와 당사자들의 도덕성에 책임이 있는 것이지만 공무원사회의 기강해이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이처럼 공무원사회의 기강이 무너진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대한 대답은 물론 공무원의 처우,민주화물결을 탄 권위주의의 척결움직임등 여러가지가 지적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보기에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정부의 인사정책이다.
무사안일하게 자리보전만 하는 사람이 승진되고 잘못이 있어 물러나야할 사람이 지연ㆍ학연등으로 오히려 더 좋은 자리로 영전되는등의 사례가 번번이 생긴다면 아무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며 그 사회는 자연 안일과 퇴폐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이렇게 볼때 우리는 이번 정부가 내세운 새 정신운동이 한갓 전시효과만을 노린 연례행사중의 하나로 그칠 공산이 크다고 본다.
고위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야할 6대덕목이나 10여개 항목에 달하는 실천사항들이 어느것 하나 기강해이의 본질 문제라기 보다는 지엽말단적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같은 식의 정신개혁운동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그때마다 실망만을 안아왔기 때문에 그런 피상적 목표설정만으로는 오히려 이번 운동의 무게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진정한 새 정신운동은 최고통치자의 철학과 실천의지에서 솟아나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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