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문화

들리는 음악, 들리지 않은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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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 달간의 강좌가 중반에 다다랐을 즈음 유난히도 어려 보이는 학생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선생님' 하며 인사하는 게 아닌가. 미처 알아보지 못해 당황하는 나에게 작곡 전공 학부 2학년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음악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가 따갑도록 강조하셔서 여름 강좌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음악을 했다고 하면, 으레 무슨 악기를 하느냐고 묻는다. 악기 전공이 아니라고 하면 이번에는 "아, 성악가시군요"하며 "어쩐지 목소리가 예쁘시더라"는 후렴까지 달아준다. 서양음악의 교육 방법이 우리 문화권에 소개된 지 어언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음악인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대부분의 일반인은 그저 '들리는 음악'이 음악의 전부인 줄 안다. '들리지 않은 음악' 즉 음악학이 음악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드문 것 같다. 지난 100년간 철저하게 실기만을 강조한 다분히 편파적인 우리 음악 교육과 활동이 이 땅에 이처럼 기형적인 음악문화를 심어놓은 것이다.

연주, 특히 서양 예술음악의 연주에 대한 비정상에 가까운 우리의 열성은 대부분 중산층 가정의 응접실마다 피아노 한 대 정도는 필수로 놓이게 했고, 거의 모든 여자 아이들로 하여금 피아노를 배우도록 했다. 자식 교육에 대한 우리 부모들의 열성은 유대인 부모들에 못지않다. 그 결과 김영욱.정경화.백건우.조수미 등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국제무대에서 갈채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문화권에서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이들이 아니다. 들리지 않은 음악이 들리는 음악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언젠가 이 땅에서 교육받은 진정한 의미의 우리 음악인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게 될 것이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처음 도입될 무렵 서구에서는 이미 음악학이라는 학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난 1세기 동안 우리 교육기관들이 이끌고 어머니들이 동조해 기교만 중시하는 연주자들을 키우는 동안, 서구는 인문학과 과학을 음악에 접목시켜 사고하는 음악인들을 길러내고 있었다. 음악이론.음악사,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음악학 등 이른바 들리지 않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음악문화의 차원이 달라진다는 걸 모른 채 무작정 달려온 100년이었다.

요즘 우리 대학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여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적 정체성을 갖출 수 있는 예술인을 양성하기 위해 통합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제도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문적인 예술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실기 중심의 예술교육만으로는 사고하는 예술인을 양성할 수 없다. 인문학적인 교과과정, 예를 들어 음악의 경우 음악사.음악학 등 인문학적인 전공의 개설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실기 위주의 전공 구분과 교과과정으로는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없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지난여름 그 지독한 무더위 속에서도 철학.문학.여성학.역사학, 그리고 문화 연구의 눈으로 음악을 바라보려는 음악학 전공 대학원생들과 학부 학생들이 있었기에 나는 강좌를 듣는 내내 행복했다. 예술 분야가 학문의 전당에 당당히 그 위치를 구축하려면 개혁만이 살 길이라는 건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곧 변할 것이다.

채현경 이화여대 교수·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