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워싱턴 舊보수파의 착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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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터키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은 의회 내 공화당 인사 등 워싱턴의 구보수파(Old Conservative) 세력의 작품이다. 구보수파들의 계산은 '터키군 1만명이 들어오는 대로 미군 1만명을 이라크에서 빼는 게 내년 대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동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너무나 단순한 판단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9일 이라크 재건작업이 전기와 같은 실생활 분야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선언했지만 이라크 국민에게 절실한 것은 생활이 아니라 정치 문제다. 그들은 전기만큼이나 스스로 자기 나라를 통치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라크 치안의 안정을 위해서도 정치적 해결방안이 필요하다.

국방부와 폴 브레머 이라크 과도행정처장이 임명하고, 통제하는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는 해결책이 못된다. 더욱이 터키군을 불러들인 것은 과도통치위의 신뢰성을 해쳐 이 기구마저 약화시킬 게 뻔하다. 터키가 이라크를 1534~1916년 약 4백년간 점령 통치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라크 국민의 반감은 당연하다.

이라크 주둔 연합군도 치안을 제공하기는커녕 여전히 이라크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전전긍긍하며 요새와 철책 뒤에 웅크리고 있다. 이 같은 정치.군사 상황에서 올드콘(구보수파)들은 미군을 이라크에서 빼내려는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 행정부는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하기 전에 이라크 주둔 미군의 상당수를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것을 새로운 정책 우선순위로 삼았고, 터키군 파병은 그 해답으로 나왔다.

터키의 상세한 파병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터키 의회가 정부 파병안을 승인한 것은 85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포함해 미국이 제공키로 한 대가가 마음에 들고, 파병 자체가 국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국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번 거래는 터키 정부에 매력적이었다. 터키는 1만명의 병사를 보내 ▶이라크 내 소수 민족인 터키계 보호▶이라크 재건사업의 경제적 실리 확보 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터키가 줄곧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지역의 유전지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는 사실도 파병 배경 중 하나다.

또 터키는 이번 파병으로 쿠르디스탄(쿠르드족 자치) 논의가 터키의 국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보장받으려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중동지역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터키는 이라크 재점령의 야망도 갖고 있다고까지 추측한다. 이라크에 무정부 상황이 초래되면, 미국의 실패를 터키가 이용하려 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이라크에서 게릴라 공격이 바트당 이슬람 수니파들이나 외국인 이슬람 급진주의자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왔다. 다수 시아파 종교지도자들이 아직은 때를 기다리며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압제에 시달린 다수의 이라크인은 결국 발언권을 주장하며 거리로 뛰쳐나오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을 의식해 이라크의 미군 사상자 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올드콘으로서는 미군이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적어도 혼돈상황의 바그다드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영구기지로 이동하길 바란다.

그러나 급진 신보수주의자, 네오콘은 중동지역의 해체를 바란다. 더 나아가 친미적이며, 친이스라엘적인 중동으로 재건하기를 꿈꾼다. 올드콘과 달리 네오콘은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전쟁 대통령'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시리아나 레바논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직접 끌어들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란이 레바논 내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하고, 핵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손 봐줄 '대상으로 꼽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할 것이라는 설이 퍼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중동 재편이란 최종 승리는 중동 전체의 분쟁의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윌리엄 파프 IHT 칼럼니스트
정리=정효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