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씨 사퇴로 술렁이는 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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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끝까지 싸울줄 알았는데 이럴수가…”/“주민의사 무시했다” 항의 빗발/“정씨 찾아내라” 유세장 소동도/선거본부 서류정리… 하루아침에 “초상집”
정호용후보 사퇴를 둘러싸고 대구시민들은 『누구 맘대로 사퇴냐』고 비난하는가 하면 냉혹한 정치현실에 굴복해야만 하는 사실을 동정하는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정후보 지지자들은 그동안의 열띤 지원도 보람없이 정씨 사퇴로 결말나자 허탈한 나머지 사무실에서 농성하는등 소란을 벌이기도 했다.
○…25일 낮 12시30분쯤 정후보의 사퇴소식을 전해들은 청년지지자 30여명이 사무실로 몰려가 『정호용사퇴 결사반대』를 외치며 책상유리를 깨고 집기를 부수는등 20여분간 소란을 피워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을 빚기도.
정후보의 사퇴설이 신문ㆍ방송등을 통해 대구시내에 퍼진 오후 2시쯤부터 정후보 사무실에는 확인전화가 빗발쳤다.
또 합동연설회가 끝나자 3백여명의 서갑구 주민들이 사무실로 몰려와 「시나리오에 의한 조작극」이라며 3시간여 동안 거세게 항의,사무소 입구에는 「의리의 사나이 정장군이여,불의의 압력에 굴하지 말라」 「옥중당선」 「정의의 도시 대구는 결정했다. 노대통령각하 민심을 받아주십시오」등 갖가지 벽보가 어지럽게 나붙었다.
참모회의등으로 북적대던 오후 9시쯤 사무실에는 측근 10여명만이 남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럴수 있느냐,끝까지 싸우겠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고 그 중 몇몇은 『이제는 끝났다』며 책상을 정리,선전물만 남아있는 폐허의 모습.
○…25일 오후 1시40분쯤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사무소에 들른 정후보 부부는 24일 밤 노대통령 부부와 만나 사퇴를 결심한 뒤 곧바로 대구로 향했다고 잠적(?)과정을 설명.
정씨 부부는 측근 참모와 조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향후 대책에 대한 논의도 해보지 못한 채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효목동 육군통합병원으로 갔으나 병원장등 고위간부들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출근치 않은 바람에 되돌아 나와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진입로쪽으로 사라진 뒤 26일 오전 10시 현재 소식이 끊긴 상태.
○…정후보가 합동유세를 불과 1시간여 앞둔 이날 낮 12시45분쯤 자신의 선거사무소에 나타나 문을 안으로 걸어잠근 채 10여명의 측근 참모들과 긴급대책회의를 갖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1백여명의 선거운동원들과 지지자들이 『사퇴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며 술렁이기 시작.
대책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정후보의 사퇴가 점점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유세장인 서도국교에 미리 집결한 1천여명의 지지자들 사이에도 『정후보가 사퇴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번져 소문을 진화하느라 핵심조직원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기도.
그러나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자 선거사무소는 정후보의 유세 참석여부를 묻는 확인전화로 전화기가 불이 나기도.
○…조직원들과 선거운동원들의 식당으로 사용해왔던 선거사무소 2층에선 정후보 부인 김숙환씨의 사조직 상지회소속 여성조직원 30여명이 모여 흐느껴 울어 정후보 사무소는 그동안의 활기는 간곳없이 초상집같은 분위기.
이날 밤 텅빈 사무실에 10여명의 조직원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유권자와 시민들로부터 자정무렵까지 『대구시민의 명예를 위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던 정후보가 유세를 포기하고 사퇴할 수 있느냐』며 『정치판이 아무리 막돼가는 세상이라 해도 유권자들을 볼모로 이럴수 있느냐』 『정후보에게 보낸 성원을 차라리 야당후보에게 모아 땅에 떨어진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살려야 한다』는 등의 분통섞인 항의전화가 빗발치기도.
○…이날 후보들의 합동유세가 벌어진 서도국민학교 유세장에는 3만여명의 청중이 몰렸으나 정후보 운동원과 지지자들이 정후보가 나타나지 않자 『정후보를 찾아내라. 유권자들을 우롱하느냐』고 유세장을 빠져나가는등 한때 소란.
이들이 「정호용을 찾아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머리위로 치켜들고 『사퇴반대』를 외쳐 상당수 청중들의 호응을 받은 뒤 1㎞쯤 떨어진 정후보 사무소까지 행진하는 동안 시민 2백여명이 합세,거센 항의소동이 벌어지자 정후보의 측근참모들은 이날 오후 5시쯤 한때 사무실을 폐쇄하기도.
그동안 정후보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해온 조용목선거사무장(56)과 도영윤조직부장(50)은 이미 이날 오후 2시쯤 정후보가 떠난 뒤 선거전략서류등 극비로 취급해오던 각종 서류를 모두 정리한 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 선거사무실은 사실상 문을 폐쇄한 상태.
○…대구서갑구뿐 아니라 시내 곳곳의 음식점과 다방ㆍ카페 등에서도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정후보의 사퇴에 따른 분노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는등 개탄의 소리가 높아 어수선한 시가지 분위기등 정후보사퇴의 후유증이 심각한 정도.
유권자 박모씨(42ㆍ대구시 평리동)는 『정후보가 공식사퇴를 할때도 지역구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정치적인 명분만 내세워 사퇴해놓고 이번에 또 자신이 마음대로 후보사퇴를 결심한 데 대해 충격과 분노를 느낀다』며 『그동안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던 정후보에게 성원을 보냈으나 끝내 정치장난에 놀아난 데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고 정후보를 성토.
시민 배성섭씨(48ㆍ대구시 대명동) 는 『자유로운 선거분위기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권이 국회의원들을 대거 내려보내 과열현상을 보일 때부터 이번 선거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그동안 끈질기게 나돌던 정후보의 사퇴가 현실로 나타나 오늘날의 정치풍토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개탄.
○…정후보가 시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문후보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코멘트로 일관했고 백후보는 『정후보 사퇴는 노정권의 압력과 회유에 의한 탄압이라고 보며 노대통령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강한 어조로 답변.
김현근후보도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해 국민의 선택권을 좌지우지하는 노정권의 부도덕성에 분개하며 국민의 강한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촌평.
○…내당동 황제맨션 101동 1109호 정후보 자택에는 부인 김숙환씨의 승용차만 주차돼 있었고 집에는 운전기사 김모씨(35)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뿐 지난 2일 정후보가 무소속출마 선언이후 외부인사ㆍ지지자ㆍ보도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분위기와는 대조적.
○…선관위에는 26일 이른 아침부터 보도진 50여명이 몰려와 잠적중인 정씨를 기다리느라 북적.
정씨가 후보를 공식사퇴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선거법 36조 「본인이 직접 사퇴서를 선관위에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 정씨가 한번은 선관위에 나타나야 하기때문.
정씨가 후보등록때 맡긴 공탁금 2천만원은 후보사퇴와 함께 모두 국고에 귀속된다.
○…대구 서부경찰서는 25일 서갑구 보궐선거 첫 유세에서 민주당(가칭) 백승홍후보 연설중 연단으로 올라가 8절지 크기의 흰종이에 「정호용을 찾아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백후보에게 전달하려던 비산염색공단내 J나염공장 운전기사 김선봉씨(31ㆍ대구시 평리4동 1193의 24)를 연행,검찰에 선거법위반 여부에 대한 지휘를 상신했다.<대구=이용우ㆍ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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