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 담당' 공무원들의 애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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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경남도청 앞에서 열린 전공노 집회에서 담당 공무원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상진 기자

"노조 탄압 분쇄." "우리의 단결된 힘으로 경남지사를 끌어냅시다."

9일 경남 창원시 용지공원에서 3000여 명(경찰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공무원 노조 사수 김태호 경남도지사 규탄 전국 공무원 노동자 결의대회'.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지도부의 연설이 끝날 때마다 "투쟁" "투쟁" 등의 구호가 이어졌다.

이때 행사장 주변을 돌면서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한다.

경남도와 20개 시.군에서 온 '공무원 단체 담당'(계.팀) 소속 공무원들이었다. 기업체 노무관리 조직과 비슷한 이 부서 공무원들은 주로 전공노 공무원들을 감시해야 하는 애꿎은 운명이다.

지난달 30일 경남도 공무원교육원에 있던 전공노 경남본부 사무실 폐쇄 때 한 공무원은 메모를 하다가 "무엇을 적느냐"며 항의하는 전공노 공무원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지난달 21일 경남도청 앞에서 열린 전공노 경남본부의 공무원 노조 탄압 규탄 기자회견과 천막농성장에서는 인도에 치려는 천막을 제지하려다 "빨리 꺼져라"며 욕설까지 들었다. '프락치'라는 비난도 나왔다.

인천 모 구청 단체담당 홍모씨는 "내일이라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면 조합원 신분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공무원 노조의 입장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충북도 내 일선 시.군 전공노 담당 공무원들은 사무실 폐쇄 등 전공노 해체와 관련된 업무를 통일하기로 했다. 시.군마다 독자적으로 행동할 경우 발생하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옥천.괴산 등 9개 시.군은 공동으로 사무실 폐쇄를 통보하는 1차 계고장을 7일 보낸 데 이어 14일에 2차 계고장을 보낼 계획이다.

'공무원 단체담당' 공무원들의 기본업무 가운데 하나는 노동계 동향 파악이다. 이를 위해 전공노 홈페이지는 물론 하루 수십 개의 노동.진보진영 사이트를 뒤져 추려낸 자료를 단체장에게 보고한다.

경남도 김주명 공무원단체 담당은 "마음고생이 심하지만 공무원 조직 내에서 건전한 노조가 자리 잡는 과도기라 생각하면서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정기환.김상진.서형식 기자

◆ 공무원 단체담당=지난해 초 행자부 지침에 따라 16개 광역단체와 234개 기초자치단체에 만들어졌다.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사무관이, 기초단체는 6급 행정직이 팀장을 맡고 두세 명으로 이뤄져 있다. 원래 자치단체장을 대리해 합법 공무원 노조와 단체교섭을 하는 업무를 맡도록 돼 있지만 지금은 불법 단체인 전공노와 관련한 업무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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