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71명 무더기 입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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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2003년 서울의 한 병원은 거액의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한 안과의사 김모씨가 1년 만에 개인병원을 차려 나가버리자 5억원의 손해를 보았다며 정모(35) 변호사를 찾았다. 정 변호사는 신용정보업체로부터 돈을 주고 김씨의 재산 정보를 몰래 빼냈다. 김씨의 재산이 상당한 사실을 확인한 정 변호사는 병원 측의 손해보상 청구소송을 맡았다.

#2.2003년 말 성모씨는 스킨스쿠버 동호회의 해저 탐사여행 중 익사했다. 성씨 유족은 관리 소홀로 사고가 일어났다며 동호회 임원 3명을 상대로 소송을 하려고 했다. 유족과 상담한 박모(39) 변호사는 불법 신용조회를 통해 임원들의 재산이 별로 없고 신용불량자도 있다는 사실을 안 뒤 사건을 맡지 않았다. 승소해도 돈을 받아낼 가능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3일 다른 사람의 신용정보를 불법으로 사들여 사건 수임 여부를 판단하고 소송 자료로 활용한 혐의(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정씨와 박씨 등 변호사 7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변호사 중엔 유명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와 판사.검사 출신 변호사가 상당수 포함됐다. 경찰은 건당 20만~30만원을 받고 이들에게 신용정보를 넘겨준 K신용정보 직원 김모(48)씨 등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변호사들은 사건 의뢰인의 민사채권이 상거래 채권인 것처럼 '신용조사 의뢰서'를 꾸미는 수법으로 2004년부터 194명의 개인 신용정보를 불법 제공받았다. 이들은 변호사 사업자등록증 사본과 상거래 확인서를 신용정보 업체에 제출한 뒤 채무자의 ▶인적사항▶부동산 및 동산 소유 현황▶주택 및 임대차 현황▶신용정보, 금융거래 내역 등을 건네받아 사건을 맡을지를 판단하고, 가압류.명도소송.채권 보전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신용정보 조회는 사업체 간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채권.채무관계에 한정된다. 개인 채권자가 채무자의 신용 상태를 알려면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내야 한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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