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대접' 일본·중국 정상과는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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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올 6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방미했을 때 받은 환대와는 대비가 될 것이다. 이번엔 백악관 집무실에서의 회담과 실무 오찬만 하는 차분한(low-key) 행사로 마무리될 것이다."

미국의 AP통신은 12일 "북핵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한.미 양국 사이에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상회담이 열린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노 대통령의 방미는 이번이 세 번째다. 모두 실무방문(working visit)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6월 방미는 일본 총리로서 7년 만의 공식 방문(official visit)이었다. 그래서 부시의 대접은 격이 달랐다.

한.일 정상을 이처럼 다르게 대하는 미국의 이유가 궁금하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방문은 올 4월 같은 실무방문이었던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도 차이가 느껴진다.

◆ 차이 나는 백악관 의전=6월 29일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에 왔을 때 부시 대통령은 최고의 대접을 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국가원수(일왕)가 아니기 때문에 백악관 공식 환영식장에서 예포를 21발이 아닌 19발을 쏜 것을 빼고는 최고지도자에 준하는 예우를 했다. 이튿날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와 함께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멤피스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 저택을 찾았다. 프레슬리의 열렬한 팬인 고이즈미 총리를 위한 최상의 배려였다. 이에 대해 토머스 시퍼 주일 미국 대사는 "두 정상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 행사"라고 말했다.

4월 20일 후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은 공식 오찬만 베풀었다. '국빈 방문(state visit)'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후 주석을 위한 공식 환영식을 열고 21발의 예포를 쏘았다. 국빈 방문의 핵심 의전인 공식 환영식, 21발의 예포 발사, 공식 만찬 중에서 두 가지를 베푼 것이다. 회담 뒤엔 두 정상이 직접 결과를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공식 기자회견도 했다. 그래서 미국의 대접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번에 노 대통령의 의전은 후 주석의 경우와 비교할 때 상당히 처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자회견(press conference)이 아닌 언론회동(press availability) 형식으로 회담 결과를 발표한다는 데 대해 전문가들도 의아해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자주 만나는 정상들은 공동 성명이나 선언문을 발표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으므로 크게 문제될 게 없다"며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는 수준의 언론회동을 한다는 건 매우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회동에서도 통상 정상들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며 "만일 질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회담은 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가 이번 회담이 한국 측에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방식으로 회담 결과를 설명하겠다고 하는 것은 한국 정부에는 좋은 징후가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전직 백악관 관리는 "미국 정부가 질문을 안 받을 수도 있는 수준의 언론회동을 하겠다는 것은 노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의전의 격, 왜 떨어졌나=이태식 주미 대사는 '노 대통령은 왜 실무방문만 하나'라는 물음에 "대통령이 형식과 격을 따지지 않고 실질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스타일을 잘 아는 이들은 "정상 간 친밀도가 의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스트로브 전 한국과장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과 일본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논문을 썼고, 그런 개념을 부시 대통령에게도 인식시킨 것으로 안다"며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와 달리 노 대통령에게 거리를 두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아무래도 개인적인 친밀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직 백악관 관리도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솔직하고 소탈하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이념적 성향이 다른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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