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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칼럼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카다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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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런던 웨스트엔드에 있는 콜리시엄 극장에서는 지금 특별한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다. 영국 국립 오페라단(ENO)이 올가을 시즌 개막 작품으로 무대에 올린 '카다피, 살아 있는 전설'이 그것이다(본지 9월 6일자 14면). 현직 국가원수를 음악극의 소재로 삼은 시도도 특이하지만 현대 오페라와 팝 뮤지컬, 아프리카 토속음악과 유럽 현대무용을 혼합한 연출가의 크로스오버 감각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오페라는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27세의 청년장교 무아마르 카다피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1969년부터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완전 포기하고 정상(正常) 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하기까지 리비아 현대사의 굴곡을 다루고 있다. 미국 등 서방 진영과의 대립과 갈등을 거쳐 대타협과 화해로 귀결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에서 카다피가 내린 고뇌 어린 결단에 극작(劇作)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으로부터 '중동의 미친 개' 소리까지 들었던 카다피가 '살아 있는 전설'이 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등극했으니 새옹지마도 이런 새옹지마가 없다.

범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사회주의에 기초한 '제3세계론'에 빠져 반미주의와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를 위해서라면 안 해본 게 없는 카다피다. 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경기장 테러를 주도한 '검은 9월단'에 대한 자금 지원을 시작으로 86년 베를린 미군 디스코텍 테러 사건, 88년 미 팬암기 폭파 사건, 89년 프랑스 UTA기 폭파 사건까지 직.간접으로 관련된 국제테러만도 부지기수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핵 개발에 열을 올려 핵무기 제조 직전 단계까지 가기도 했다.

그 바람에 수모도 많이 겪었다. 86년 미국의 기습 폭격으로 카다피 자신이 거의 죽다 살아났고, 양녀를 포함해 6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 최대의 석유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93년부터 10년간 지속된 유엔의 경제 제재로 유전 개발과 석유 수출 길이 막히고, 해외자산 동결에 상품.금융 거래가 중단되면서 리비아 경제는 파탄 지경까지 갔다. 정치.경제적 고립무원 상태에서 실업률은 30%까지 치솟고, 물가는 매년 50%씩 폭등했다.

하지만 다 옛이야기가 됐다. 2004년 미국이 리비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투자자들의 분주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 자유화와 국영기업 민영화 등 개혁 정책 드라이브 속에 유가 상승의 행운까지 겹쳐 지난해 8.5%의 실질성장을 기록했다. 경제가 급속히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카다피는 2003년 12월 모든 종류의 WMD를 자유의지에 따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모든 관련 시설을 해체해 미국으로 실어 보냈고, 자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았다. 미국의 요구대로 벌거벗은 셈이다. 그렇다고 카다피가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국내 권력 기반은 여전히 공고하다. 미국.중국 등 강대국도 리비아처럼 WMD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대외적으로도 당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힘의 논리가 아닌 평등의 기초 위에서 대미 관계 발전을 도모하겠다며 86년 폭격 사태에 대한 사과와 보상도 요구하고 있다.

통 큰 결단을 통해 카다피는 나라도 구하고 정권도 살렸다. 그 결과 리비아는 희망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도자의 선택이란 그런 것이다.

한명숙 총리가 다음주 리비아를 방문한다고 한다. 카다피를 설득해 남북한을 동시방문하면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보도록 하면 어떨까. 카다피와 김 위원장은 동갑인 데다 성격도 비슷해 보인다. 두 사람이 만나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터놓고 얘기해 보면 뭔가 극적인 돌파구가 열릴지 아는가. 김 위원장이라고 '살아 있는 전설'의 주인공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