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면 '불패 4대 요소'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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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가장 많이 필요한 게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궁금증도 하나 생긴다. 베팅할 자금이 많은 사람이 유리할까? 아니면 고급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앞서 나갈까?

내 주변에 3000만원 정도의 돈으로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금이 작다 보니 큰돈은 못 벌어도 장이 좋을 때는 꽤 쏠쏠한 용돈 벌이는 된다. 10%만 올라도 300만원을 버니 친구들과 술 한잔할 용돈은 된다.

그러나 그 정도 자금으로 큰돈을 벌기는 힘들다.

부동산은 일반적으로 기본 투자단위가 주식보다 훨씬 크다. 아파트나 상가도 몇억 단위를 훌쩍 넘어 버린다. 특히 강남이나 한강 이남 수도권 부동산에 투자할 경우 그 액수는 더 커진다. 때문에 아무리 자금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부동산에 투자할 경우에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천만원 가지고 용돈 버는 주식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고수들은 인적 네트워크 '풍부'

이처럼 덩어리가 큰 부동산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성공요소는 전주(錢主), 지주(地主), 공무원, 금융권 인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소위 '부동산 불패 4대 요소'라고 통한다. 이 4대 요소만 갖추고 있으면 부동산에서 '대박'을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요소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사람과 관련된 요소다. 한마디로 인적네트워크가 풍부한 사람이 부동산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학벌사회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인맥중심 사회다.

지난해 모 일간지에 '한국의 보통사람들은 2 ̄3명만 건너뛰면 전부 아는 사람들이다'는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 소위 말해 '마당발'이 출세할 확률이 높은 사회다. 고위관료, 대기업 CEO, 국회의원 등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지인들이 많다'는 공통점들이 눈에 띈다.

내가 아는 부동산 '고수'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출신이 아니다. 부동산 밑바닥에서부터 고생하며 부동산을 배운 사람이 많다. 그들은 누구 못지않은 화려한 인적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언뜻 보면 부동산하고 전혀 상관없을 듯한 사람들과도 친분을 유지한다. 마당발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이들은 자신의 이익(물론 부동산을 통한 이익이다)을 증대시켜 줄 사람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친분을 맺어 놓는다.

시.군.구청의 9급 말단 공무원부터 구청장은 물론 시.구의원, 정치인, 기자, 은행원, 경찰 등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만나 친분을 맺어둔다. 추석.설날 등 때가 되면 '인사' 치레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신문지상을 통해 공무원들의 비리 보도를 접한다.

그중 흔하게 터지는 비리가 부동산 관련 비리다. 부동산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우월적 지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해 때론 사적으로, 때론 부동산 투기꾼들과 공모해 부동산을 사고 팔아 엄청난 시세차익을 남겼다는 식의 보도를 접하곤 한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공무원들의 비리다. 우리나라처럼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시세차익)이 많은 나라에서는 어쩌면 이 같은 공무원이 연루된 부동산 비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20대보다 더 바쁜 70대 할머니

강남 부동산가에서 널리 알려진 박(朴) 할머니란 분이 있다. 내가 예전에 몇 번 만나 본 적이 있는 '부동산업계 큰손' 중 한 사람이다. 소문이지만 잠실 등 강남 일대 재건축 아파트 100여 채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화제가 된 이 업계 최고령 고수다.

이분은 70대 할머니지만 일할 때는 20대 젊은 사람 못지 않게 더 바쁘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귀동냥을 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손자뻘 되는 업자들과 토론도 자주 한다.

박 할머니의 최대 장점은 만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사람뿐 아니라 지역 유지(경찰, 공무원, 시의원, 법조계 인사 등등) 등과 점심.저녁 약속이 끊이질 않는다. 소문만큼 인적 네트워크도 막강하다. 강남에서 내로라하는 인사치고 이 사람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만큼 사람 관리가 철저하다.

부동산업자 입장에서는 일단 부동산 관련 공무원부터 챙긴다. 따끈따끈한 현실정보가 모두 이들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정보는 물론 도로확장과 신규도로 개설, 관공서 이전정보 등 부동산업자들에게 필요한 고급정보는 거의 이들을 통해 나온다고 보면 된다. 건교부 등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 현지 시.군의 부동산 관계자, 읍.면장에 이르기까지 먹잇감(?)이 있는 곳은 예외없이 손길을 뻗친다. 지방의 부동산을 사기 위해 명의가 필요하다면 현지 마을 이장에게 막걸리 파티를 열어 주고 용돈까지 주는 일은 이미 고전적인 방법이 됐다.

지금은 일산 쪽에서 활약 중인 부동산시장의 고수 축에 끼는 A(50)씨의 경우를 보자. A씨는 고졸 학력이 전부다. 그는 부동산시장 바닥부터 시작했다. 건설 현장 '노가다'도 해 봤다.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찌라시(팸플렛)'를 돌리는 속칭 '꼬마'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하루 이틀 사이에 1000억원대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부동산업계 큰손이다. 몇 년 전 지방 모 도시에서 괜찮은 위치에 오피스텔을 분양할 때 수백억원을 동원해 그곳 오피스텔을 싹쓸이한 적도 있다. 현지 부동산업자들이 '서울 큰손이 내려와 우리 밥그릇을 죄다 빼앗아간다' 면서 항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를 할 정도였다.

A씨 수첩 한 켠에는 대학교수 명단이 빼곡히 차 있다.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교수가 아니다. 부동산 관련 학과 교수도 아니다. 거의 다 건축이나 토목 쪽 전공 교수들이다. 이들 교수는 서울시 등 지자체의 건축심의위원을 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재개발.재건축을 포함해 지자체의 모든 건축 관련 심의를 맡고 있는 핵심 인물들이다.

지자체의 중요한 부동산정책이 이들을 통해 이뤄진다. 중요 안건을 심의할 때 이들은 집에도 못 들어가고 호텔방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개인별 경호원도 따라붙는다. 그만큼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보통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이들의 움직임은 통제받기 때문이다. 혹시 이들 입을 통해 고급정보가 새나가면 그야말로 부동산 관련 정책에 큰 차질이 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의 신상파악이 가능하고, 이들에게 접근이 가능하다면 역설적으로 최고급 부동산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부동산 고수들은 이들의 신상파악을 위해 필사적이다. 설령 파악이 된다고 해도 접근 자체가 어렵다. 그러나 A씨의 수첩엔 이들 이름이 상당히 많이 올라 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그래서 A씨를 고수라고 부른다.

부동산에서 승부를 걸어 볼 생각이라면 전주(錢主)와 지주(地主)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전주는 돈을 대는 사람이고, 지주는 땅을 공급하는 사람이다. 부동산은 덩치가 크다. 그만큼 가격도 '세다'. 매력있는 부동산이 매물로 나왔을 경우 부동산업자들 사이에선 시간 싸움이다. 그 싸움은 누가 얼마나 빨리 많은 돈을 동원하느냐에서 판가름난다.

경기도 파주시에 LG필립스공장이 들어서기 몇 년 전 일이다. 그 당시 벌써 부동산업자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이 일대 부동산시장이 후끈 달아오른 적이 있었다.

벤츠 등 고급승용차를 타고 그 지역을 돌던 부동산 업자들은 최소 20억 ̄30억원을 갖고 다녔다. 부동산업자들이 벤츠.BMW 등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다니는 것도 바로 돈이 많은 업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다. 변호사들이 개업하자마자 큰 차를 사는 이유와 비슷한 셈이다.

괜찮은 물건이 나오면 현장에서 바로 계약을 하기 위해서였다. 현장 물건을 보고 미처 돈을 못 챙겨 온 업자가 다음날 돈을 갖고 찾아갔더니 벌써 계약이 끝나버린 사례도 많았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지주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땅 주인이 안 팔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때문에 땅주인을 설득해 적정한 가격에 팔게 하는 것도 기술이다. 부동산시장에서 비교우위를 가지려면 업자 본인이 전국의 땅주인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땅주인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을 잘 사귀어 놓는 것도 방법이다.

부동산도 정보싸움이다. 부동산은 전 국토가 사업장이자 경쟁터다. 그만큼 정보력이 필요하다. 그 정보력의 기본은 인적 네트워크다.

정리=이기수 이코노미스트 기획위원<(leek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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