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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세발 까마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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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흉조(凶兆)이자 흉조(凶鳥). 죄라면 검은 몸이 죄다. 하나 덧붙인다면 인간의 시체를 파먹는 습성도 있으렷다. 이솝이 남의 깃털이나 탐하는 새로 매도하면서 받은 타격도 컸다. 어디 몸 검은 게 까마귀뿐이며, 인간 시체를 먹는 새가 까마귀뿐이랴. 억울할 만도 하다. 하기야 인간은 같은 종(種)끼리도 색깔 차별을 하니 그리 원망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까마귀를 '새대가리'로 부르는 건 곤란하다. 까마귀는 돌고래 뺨치는 지능을 가졌다. 동물학자 아돌프 포르트만은 까마귀의 대뇌화 지수가 19로 새 중 최고라고 밝혔다. 대뇌화 지수는 동물의 뇌가 몸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고등 생물일수록 이 지수가 높다. 참새와 같은 연작류는 4~8 정도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2004년 12월 까마귀의 지능이 영장류에 필적한다는 논문을 실었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까마귀의 진가를 진작 알아챘다. 까마귀 연구에만 20년을 썼다. 캐나다와 맞닿은 미국 동북부 끝자락 메인주 숲 속에 통나무 집을 짓고, 까마귀를 자식처럼 길렀다. 눈밭에서 목욕하고, 미끄럼을 즐기며, 더운 날엔 둥지에 구멍을 뚫고, 장난삼아 거꾸로 날거나, 다른 새들을 속이는 것까지 일일이 기록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까마귀는 가장 인간과 비슷한 생태를 지닌 종"이었다.

고대 신화 속 까마귀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북유럽 최고의 신 오딘의 두 어깨에 앉은 까마귀는 각각 오딘의 눈과 마음, 기억을 상징한다. 중국에선 '세 발 까마귀(三足烏)'를 태양에 견줬다. 삼족오에 대한 기록은 '회남자'에 처음 보인다. '해 속에 준오(烏)가 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한나라 때 왕일은 주석을 달아 '요(堯)임금이 예()에게 명해 10개의 태양을 앙사(仰射)시킴. 아홉 태양에 맞음. 해 속의 아홉 삼족오는 모두 죽고 태양 하나만 남음'이라고 했다.

세 발 까마귀는 단군 조선의 상징이기도 했다. '환인.환웅.단군을 상징하는 태양 3신'(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이요, '천지인(天地人)의 상징이자 민족 정신의 메신저'(국학원)였다. 이 정신은 고구려로 이어진 뒤 끊겼다. 그 후 1000년여, 세 발 까마귀는 까맣게 잊힌 이름이었다.

그랬던 세 발 까마귀가 다시 뜨고 있다. 또 불거진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고구려의 상징으로다. 15일부터는 시민단체들이 1000만 명의 가슴에 삼족오 배지를 달도록 할 계획이다. 삼족오의 부활이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