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화ㆍ권력 집중 양립될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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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탄생
권력의 모든 가닥을 한손에 쥘수있는 대통령제를 신설하고 그 자리에 앉게 된 고르바초프의 선택은 볼셰비키혁명을 구조적으로 변혁하려는 그의 목표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서로 양립되기 어려운 두가지 요소­민주화 개혁과 정상의 권력집중­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는 커다란 의문을 남겼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5년 동안 국내적으로는 스탈린주의의 경직성으로부터 체제를 해방시켜 경제에 활력을 다시 불어넣고 대외적으로는 신사고를 통해 이념과 군사대결을 평화공존구도로 바꿔보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은 내외로부터 엄청난 도전을 몰고 왔다. 70년 동안 권력을 독점해온 당료들의 수구적 반발과 페레스트로이카가 삶의 물질적 조건을 개선해주리라 믿었던 일반 국민들의 조급성이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불만으로 커가고 있다.
또 스탈린주의의 압제 아래서 숨을 죽이고 있던 소련내 여러 갈래의 민족주의가 독자ㆍ독립노선을 내걸고 소연방 판도의 와해를 위협하고 있다.
동구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는 곧 소련의 세력권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풍요한 서구로의 접근을 허용하는 열쇠로 이용되면서 고르바초프가 처음 의도했던 선을 넘어서고 있다.
이와 같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생각이었고,반론은 있었지만 소련 인민대회는 절대다수의 표로 그의 생각을 지지해줬다.
이로써 고르바초프는 레닌ㆍ스탈린 이래 가장 강력한 집권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흐루시초프가 당한 것과 같이 정치국 밀실에서 권좌를 잃게 되는 일은 당하지 않게 되었다. 새 헌법은 약간의 수정은 있었지만 새 대통령에게 비상사태 선포권,포고령에 의한 통치권,동원령 발동권,각료 임면권,최고회의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한 거부권등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와 같은 권력집중을 가지고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지금보다 더욱 강력히 추진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련처럼 혹독한 독재자를 여러번 겪었던 나라에서 어떤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의 권력집중이 또다시 독재체제로 되돌아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고르바초프가 보여준 행적으로 본다면 당장은 그런 위험보다는 개혁에 따른 내부 혼란을 수습하면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권력집중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고르바초프의 대통령직 장악으로 그가 결국 반대파에 몰려 실각하게되고 소련은 다시 스탈린시대로 되돌려질 수도 있다는 서방세계의 우려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이 장기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서방세계는 대소관계를 전개해나갈수 있게 되었다.
한국이 추진해온 대소 교류와 협력관계도 그런 점에서 보다 확실한 근거 위에 서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와 독자노선을 가고 있는 나머지 두 발트해 연안 공화국사태에 대해 고르바초프가 강화된 권력으로 밀어붙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사태가 오면 페레스트로이카나 국제관계의 신사고 등은 자칫 전화 속에 타버릴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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