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티엔」서 생각해본 우리 교육/권영빈(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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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주일을 태국 남쪽에 있는 바닷가 소읍 좀티엔에서 보낼 기회를 가졌다. 상하의 휴양지에서 복에 겨운 휴가를 즐기게 되었다는 애초의 예상과는 딴판으로 교육에 대한 세계인 모두의 뜨거운 열기에 말려들어 정신없이 보낸 한주일이 되고 말았다.
유엔 산하기관인 유니세프 유네스코 UNDP 세계은행이 합동주관한 「인류 모두를 위한 세계교육 회의」(World Conference on Education for All)가 5일부터 닷새동안 휴양도시 파타야 부근의 좀티엔에서 열렸다. 1백여 나라를 대표한 1천5백여명의 교육행정 및 교육전문가들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교육을 주제로한 모임으로서는 일찍이 그 유례가 없는 대규모 국제회의였고,그 열기와 토론내용 또한 뜨겁고 진지했기 때문에 마지막날 채택된 교육선언과 행동강령은 향후 세계교육의 큰 흐름을 이룰수 있는 중대한 이벤트였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 자리였다.
23개의 주제별 토의와 24개의 지역별 사례발표가 4일동안 동시에 열렸기 때문에 그 구체적 내용을 소개하기란 벅차고 다만 논의의 큰 흐름을 요약한다면 다음 세가지로 나눌수 있다.
그 첫째가 카리브해 연안국가들과 라틴아메리카ㆍ아프리카 등 제3세계국가들이 제기한 국가발전과 교육재정에 관한 논의였다. 후진국이 짊어지고 있는 외채의 빚더미위에서 늘어만 갈수밖에 없는 문맹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또다른 외채를 짊어질수 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국제적 차원에서 해결해 달라는 안타까운 호소였다.
따라서 회의주관 단체중의 하나인 세계은행에 대한 외채상환기간의 연장과 교육을 위한 무상원조의 소리가 줄기차게 제기되었다.
두번째 토의의 주된 흐름은 1억명의 어린이들이 학교교육에서 제외되고 있고 세계인구의 25%가 아직도 문맹상태에 남아있는 엄연한 현실을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고 교육의 형평성을,교육권리의 확대를 유도하느냐에 초점이 모여졌다.
세번째 흐름은 중진국 이상의 지역국가들의 관심사인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방법론의 모색이었다. 읽고 쓰고 셈하기의 단순 기초교육을 벗어나서 산업사회의 실제 생활에 필요한 기능으로서의 교육,죽은 교육이 아닌 살아있는 교육,이른바 기능적 문해교육(Funct­ional Litracy Education)을 어떻게 펼치느냐는 것이다.
산업화시대 속에서 자동차 운전을 할줄 모르고 10년동안의 영어공부 끝에도 외국인을 만나면 입이 떨어지지 않고 컴퓨터라면 아예 손을 드는 세대,정치적 분별력과 문화적 개안을 갖추지 못한다면 현실사회의 직업인으로서의 기능적 적응을 할수 없는 사실상의 또다른 문맹이 될수 있다. 그러한 전제아래서 현재의 교과과정을 어떻게 개편할 것이고 사회교육의 프로그램을 레저위주에서 기능중심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이며 주입식ㆍ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사고력을 늘려나가는 교육이 되도록 할 것이냐에 교육의 목표를 세우자는 것이다.
회의 두번째날,바로 이 문제를 제기한 한국의 라운드 테이블에는 2백여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교육개발원의 최운실ㆍ허경철박사의 주제발표를 듣고 진지한 질의와 토론을 벌였다. 토론이 끝난 다음 미얀마르의 문교부장관이 한국측 대표인 신세호박사에게 다가와 미얀마르에서 구상중인 교육개혁 프로그램에 한국쪽 연구원을 파견해 줄것을 부탁했고 이스라엘 문교장관 또한 교육개혁을 위한 상호교류를 제의해왔다.
해방되던해 문맹률 75%가 80년대 중반 3%라는 경이적 문맹퇴치율을 보인 한국의 성공사례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경이롭고 비약적인 발전일 수밖에 없다. 플로리다주립대 로버트 모건 교수는 마지막날의 한 토론장에서 한국학생들의 성적신장률이 전과목에서 20%이상씩 신장했다는 문교부 자료와 국제학생성적평가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를 통해 한국의 초등교육 성적은 톱랭킹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은행이 주재한 초등교육 회의장에서도 한국의 문교예산 70%이상이 초등교육에 투자됨으로써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동인이 되었다는 찬사가 터져나왔다.
과연 외국인들의 상찬을 아낌없이 받을수 있을만큼 우리의 교육은 온전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가. 칭찬을 들을때는 우쭐한 기분이었지만 되돌아 생각해 볼때 뭔가 석연치않은 어두운 그림자를 가슴속에서 지울수가 없었다.
비록 양적인 팽창과 성장은 비약적이었다 할지라도 외형상의 팽창과 성장이 가져온 불균형과 주름살을 어떻게 펴 나가야 할것인가. 경제성장이 그러했듯 교육의 발전 또한 외형상의 성장에만 급급한 나머지 과열입시풍조,암기식ㆍ주입식교육에 대한 반성과 자책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만 그를 풀어나가는 정책과 방향은 전무한 상태가 아닌가. 임시방편과 일시적 땜질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는 우리의 교육정책이 진정 외국인의 칭찬을 받을만큼 온전한 성장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자책과 반성이 사라지질 않았다.
양적인 성장만을 거듭해온 우리의 교육을 어떻게 하면 질적인 성장과 병행시킬수 있느냐에 우리의 교육목표를 새롭게 세워야할 때가 이젠 다가온 것이다.
민주주의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키워주는 학교교육체제,주입식ㆍ암기식의 점수따기 교육이 아닌 창의성과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교육방법의 개발,그러한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 교육평가방식,현실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미래의 구상을 펼칠수 있는 교육내용,입시위주의 교육현실을 타개할수 있는 장기적 대책수립등이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검토될수 있는 종합적 국민교육위원회가 세워져야 할것이다.
임시방편의 땜질식 교육정책이 아니라 후기산업화시대를 담당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목표와 방법이 지금부터라도 종합적으로 계획되고 연구되어야 한다.
비록 1백여 나라의 교육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거듭한다지만,결국 제나라의 문제는 제나라 특유의 여건과 환경에 맞춰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나갈수 밖에 없다. 「좀티엔」은 태국어로 횃불이라고 한다. 좀티엔 교육선언이 한갓 부질없는 말장난으로 끝나지 않고 세계와 인류를 밝힐수 있는 거대한 횃불로 밝혀지기 위해서도 양적 팽창만을 거듭해온 우리교육이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일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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