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 근본대책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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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부산에 사는 전모군이 87년 더 배울 것이 없어 국민학교를 휴학하고 독학으로 토플시험에서 5백70점을 얻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해 교육감을 찾았다. 전군과 같은 꿈나무는 실험적으로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교육시킬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모가 미국유학을 보낸다고 휴학을 시키니 도리가 없다는 대꾸만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외국인학교에서는 전군의 성취도와 능력을 조사하여 8학년(중2) 과정에 편입시켜 주었다. 1년간의 성적이 전 교과에서 A(표준화된 검사지에 의한 성적)로 출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교당국이 공문으로 『취학이 불법이므로 즉각 퇴학 조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외국인학교에서는 장래가 촉망되는 전군을 버려 둘 수 없어 미국에서 영재고교를 물색하고 추천하여 11학년(고2) 과정에 입학허가와 장학금까지 얻어주었다. 그는 이제 프린스턴대학 물리학과에 14세의 나이로 입학했다.
이밖에도 영재들이 많이 있으나 이들에 대한 교육적 배려는 전혀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6학년 교실에서 더부살이로 푸대접받으며 공부하는 전주의 이모군(7), 입학은 했지만 배울 것이 없다고 불평만 하는 장흥의 옥모군(5), 혼자 중학수학 2년 과정을 공부하는 8세인 부산의 배모군 등이 그들이다.
한편 그 동안 이들 영재어린이 부모들이 당국에 배려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수없이 제출했는데도 문교당국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도움을 줄 방도가 없다』는 회신만 보내오고 있을 뿐이다. 마치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문교부는 과학고교가 설치될 즈음부터 『과학영재교육을 실시하라』는 지시를 일선학교에 시달한바 있으나 이는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 아닐까 한다.
현장의 교사들은 영재어린이 지도에 관한 훈련도 받지 않았고 또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 당국의 각별한 정책적 지원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방과후 별도로 실험(보통 어린이들에게도 물론 시켜야 함)만 시키고 있는가 하면 어떤 수학영재교육 시범학교에서는 IQ 1백20이상 되는4학년생에게 5학년 산수교과서를 지도하기도 했다. 이들이 5학년이 되었을 때의 대책도 없는 지도는 아무 성과도 기대할 수 없으며 혼란만 초래하게 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영재교육에 관한 엉뚱한 구상까지 하는 것 같다. 보도에 의하면 특수영재 어린이를 위한 영재교육센터의 설치다. 각시·도 교위에 센터를 설치하고 방과후나 방학 때 영재어린이를 지도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 나라에는 영재교 육을 위한 교사의 양성도 돼있지 않고 교육프로그램이나 자료의 개발도 돼있지 않은 상황에 서 센터가 어떻게 무엇을 지도한다는 말인가.
문교당국이나 일반인들도 영재교육이 일종의 특혜교육이며 평등주의에 위배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사실 영재어린이도 소질과 능력을 최대로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보통 어린이들과 다른 특별프로그램으로 지도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육법4조에도 분명히 명시돼 있다.
87년 교육개혁 심의회에서 획기적인 영재교육 진흥방안을 마련한 일이 있었다. 영재아에 게는 능력에 상응하게 조기입학·월반·조기졸업·조기배치 등이 가능한 길을 터놓는다는 것이었다. 또 영재교육 담당요원의 양성과 교육프로그램개발 등 포괄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재 이렇다할 가시화 된 반응이나 성과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껏 문교행정을 보면 대체로 통제 일변도였다. 또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교시책들은 조령모개식으로 바뀌어져 혼란만 초래해왔다 할 것이다. 특히 영재교육분야에서 영재아들이 개별적인 필요와 욕구를 수응하는데는 그 관심과 힘이 턱없이 미치지 못하였다는 게 솔직한 평가다.
앞으로 영재교육에 보다 크게 눈을 떠 제반 시책을 과감히 추진하지 않으면 발전하는 국제사회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내일의 번영은 천연자원이 아닌 인간자원의 계발에 달려있지 않은가. 정연태 <한국영재아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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