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직 국방장관·주한미군사령관 "전작권 조기 이양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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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일부 전직 국방장관.장성들도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의 조기 한국 이양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나라의 최고 군사전문가들이 한국의 전작권 단독 행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10일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빌 클린턴 행정부 1.2기 때 각각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와 윌리엄 코언을 비롯해 1990~93년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리스카시,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 등이 최근 전작권 조기 이양에 반대하는 서한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들은 준비한 서신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 일단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전직 국방장관 등은 7월 미국 국방부가 한국에 '2009년까지 전작권을 이양한다'는 방침을 통보하자 그냥 있을 수 없다며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런 움직임을 무시하는 동시에 주저하는 백악관과 국무부를 설득해 전작권 조기 이양 방침을 굳혔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들은 "조기 이양에 대해 럼즈펠드 장관은 그것이 주한 미군 재편 전략에도 맞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첨단무기 판매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직 국방장관 등의 서한은 한국의 전작권 행사 능력이 충분한지 아직 입증되지 않았으며, 조기 이양할 경우 한.미 동맹 약화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북한에 전해 불행한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리스카시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6자회담 상황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을 감안할 때 전작권 조기 이양은 잘못된 결정"이라며 "(북한에) 약점을 노출하면 한.미 동맹과 한국에 모두 도움이 안 된다"고 최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또 "무슨 일이든 지휘자가 두 명이면 실패하기 쉬우므로 전작권은 어느 한쪽이 쥐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스카시 전 사령관은 재직 중이던 92년 평시 작전통제권 이양 협상을 했던 당사자다.

미 해병대 암호 해독관으로 한국에서 4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브루스 벡톨 해병대 지휘참모대학 교수는 "한국이 전작권을 받으려면 앞으로 최소한 5~7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전력을 얕봐서는 결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런 근거로 그는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 외에 ▶남한의 아무 곳이나 공격할 수 있는 스커드 미사일을 600기 이상 가지고 있으며▶그보다 정확한 소련제 SS-21 미사일도 독자적으로 개량했으며▶수도권을 초토화할 수 있는 장사정포를 휴전선에 배치하고 있다"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다른 관계자는 "미 국방부 내 한국통인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보도 지난해까지는 전작권 조기 이양에 아주 조심스러운(very cautious) 입장이었으나 올해 초 럼즈펠드 장관의 뜻이 확고부동하다는 점을 깨닫고는 본격적으로 전작권 이양 작업에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연구원은 "백악관과 국방부 관리 수십 명을 접촉한 결과 한국은 지휘통제 자동화체계(C4I) 등 군사 기능면에서 아직 전작권을 단독으로 행사할 능력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데도 미국이 조기 이양을 추진하는 데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좌절감 등 정치적 이유가 작용했다"며 "전작권이 한국에 이양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부부 관계에서) 이혼하는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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