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지하상가서 가스 누출 상인 등 60여 명 중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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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지하철 종각역 지하상가에 일산화탄소가 누출되는 사고로 역이 폐쇄되자 시민들이 직원에게 상황을 문의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8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지하 1층 상가에 일산화탄소(CO)가 스며들어 상가 상인들이 중독되고 지하철 승객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상가 상인들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부터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오후 4시쯤 외부 공기를 마시러 나가던 상인들 중 네 명이 갑자기 쓰러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현장에서 쓰러진 강모(76)씨 등 39명을 백병원.이대병원.강북 삼성병원 등으로 긴급 후송했다.

또 27명은 개별적으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소방대원들은 즉각 지하상가.지하철역 안의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한편 지하도 입구를 봉쇄했다. 후송된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두통과 현기증.메스꺼움을 호소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서울백병원 염호기 부원장은 "병원에 온 환자들은 CO에 중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자 종각역 주변은 놀란 시민들이 한꺼번에 계단을 올라오면서 한때 난장판이 됐다. 사고 당시 종각역 상가엔 105개의 상점에서 200여 명의 상인이 일하고 있었다. 종각역의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10만 명에 달한다. 현장엔 소방차 36대와 소방대원.경찰 190여 명이 출동했다.

?CO농도 평소보다 한때 10배=경찰과 소방 당국은 지하상가 2층 기계실에 있는 중앙집중 냉난방기에서 CO가 누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 결과 이날 낮 12시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측에서 겨울철에 대비해 냉난방기를 시험가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노후화된 냉난방기에서 액화천연가스(LNG)가 불완전연소해 CO가 발생, 계단을 타고 지하 1층 상가로 퍼진 걸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상가의 환기시설도 2003년 8월 리모델링하면서 네 곳에서 한 곳으로 줄어든 바람에 환기가 제대로 안 됐다.

사고 현장에선 CO의 농도가 평소보다 10배가량 높은 225ppm까지 올라갔다 오후 5시30분에야 평소 수준(20ppm)으로 낮아졌다. CO는 색깔과 냄새가 없으며 농도 200ppm인 환경에서 2~3시간 노출되면 두통을 느낀다. 경찰은 관리 소홀이 원인으로 밝혀지면 관련자를 입건할 방침이다.

사고 여파로 지하철 1호선이 한때 종각역을 무정차 통과했고 소방차량과 퇴근차량이 뒤엉켜 종각 일대를 중심으로 도심에서 큰 교통 혼잡이 빚어졌다. 상황이 안정된 오후 5시25분이 돼서야 지하철 운행과 상가 통행이 정상화됐다.

권호 기자<gnomo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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