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소장 지명 '하자' 찾아낸 조순형 의원 '도서관 의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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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조순형(얼굴) 의원의 '도서관 의정(議政)'이 헌법재판소장 인사 청문회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인사청문회 첫날 그가 처음 제기한 '지명 과정에서의 절차상 하자'는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평소 의원회관의 사무실 대신 주로 국회 도서관을 이용하며 의정활동과 관련한 연구에 몰두해온 그의 독특한 의정 스타일이 결국 청문회 파란으로 이어진 셈이다.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 이틀째인 7일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청문회가 끝나자 조 의원은 곧바로 도서관 2층의 법령자료실로 향했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신설된 헌법재판소 관련 조항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불 꺼진 도서관엔 2층만 훤했다. 경비 직원은 "오후 6시면 퇴근해야 하지만 지금 의원님 한 분이 계셔서 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5일에도 그는 도서관을 찾았다. 동의대 사건 등 전 후보자가 재판관 시절 내렸던 결정문들을 샅샅이 들여다 봤다. 헌재와 중앙인사위로부터 받은 전 후보자의 지명 및 사퇴일자를 따져봤다. 그러던 중 전 후보자가 재판관 사퇴 후 당연히 거쳐야 할 재판관 재임용 절차를 거치지 않은 '하자'를 발견했다.

도서관 직원들에 따르면 조 의원은 주로 5층 열람실에 머문다. 10여 개의 열람석 중 끝 열 첫 자리가 그의 고정석이다. 2004년 탄핵 파문으로 낙선되기까지 그가 이용했던 자리다. 열람실을 관리하는 김성년 주사는 "조 의원은 일주일에 보통 세 번 정도 온다. 점심식사 후 왔다가 5시를 넘겨 퇴근한다"고 했다.

열람실에서 '헌법재판강의'라는 헌법재판소법 관련 서적을 들춰보던 그에게 기자가 '도서관 지킴이'가 된 이유를 물었다.

-왜 도서관을 애용하나.

"회관 사무실에 있으면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오고 불쑥불쑥 사람들이 찾아와 집중해서 뭔가를 할 수가 없다."

-헌재소장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제기된 법리 논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대통령이나 헌법재판소가 모두 헌법 의식이 약했기 때문이다. 헌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이번 사태의 배경이다."

-전 후보자의 지명 과정의 '하자'에 대해 일각에선 '사소한 절차상의 흠결'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도 중요하다. 사소한 하자라고 해서 헌법 조항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국회의 책임이 없나.

"국회 역시 반성해야 한다. 청문회를 하기 전에 여야가 당연히 따졌어야 할 문제를 따지지 않았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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