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상상 ? 이렇게 생생한데 ? 로알드 달 이야기 보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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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여덟 살 때부터 엄격한 기숙학교에 다닌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수업 중에 이야기를 하거나, 숙제를 잘못하거나, 책상에 이름의 머리글자를 새기거나, 종이 집게를 튕기거나…"처럼 "어린 소년들이 당연히 할 만한 모든 일들 때문에" 매질을 당하며 살았다.

상급학교로 진학해서는 선배의 빵을 태웠다는 이유로 매타작을 당하는 등 상황이 더 나빠진다. 소년의 영작문 학기말 성적표는 "어휘력 조잡하고 문장력 없음.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나태하고 무식한 편에 속함" 따위의 잔인한 말들로 채워졌다.

이 소년은 훗날 에드가 앨런 포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이야기꾼이 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으로 수많은 어린이 팬을 거느린 로알드 달(1916~90)이다. 이 책은 1977년에 발표한 달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책에는 형편없는 영작문 성적표 때문에 작가가 되리라는 상상은 하지도 못했던 그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이야기를 적은 단편 '행운'이 담겨 있다. 작가는 '행운'에서 "나는 논픽션, 그러니까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쓰는 것엔 별로 흥미가 없다. 더더군다나 내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쓰는 것은 더욱 싫다"고 밝힌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쓴 논픽션 두 작품이 이 소설집에 모두 담겨 있다. 전쟁 경험담을 쓴 첫 작품 '식은 죽 먹기'와 영국의 고대 유물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 '밀덴홀의 보물'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그의 뛰어난 상상력이 만들어냈다. 상상력이 만들어낸 소설이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나 생생하다.

표제작인 '기상천외한 헨리슈거 이야기'는 훈련을 통해 카드를 투시하는 능력을 얻은 한 인물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마치 그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의 생생한 이야기는 늘 한 문장, 혹은 한 단어의 짧은 메모에서 시작됐다. 그는 늘 아이디어를 빼곡히 채운 노트를 들고 다녔단다. 이 책에는 작가의 아이디어 창고에서 살아남아 생명력을 얻은 7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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