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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채택­당국서 좌지우지(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5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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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집필기간 짧아 졸속 제작 우려/검인정도 과목당 제한… 출판사들 경쟁 치열
1천만 초ㆍ중ㆍ고교생들이 경전처럼 떠받들고 있는 교과서가 정권의 변화에 따라 내용이 뒤바뀌고 특정 계층에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을 전체학생들에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교과서 정책이 교과서의 개발ㆍ제작에 관한 모든 사항을 문교당국이 독점토록 되어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각 학교의 교과용 도서는 문교부가 저작권을 가졌거나 검정 또는 인정한 것에 한한다」(교육법 제1백57조1항),「1종도서는 문교부가 편찬한다」(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제5조),「2종도서의 검정기준은 교과목별로 문교부장관이 정하며 합격결정도 문교부장관이 행한다」(같은규정 제15조 및 20조1항).
이같은 관련법규를 보면 문교당국이 교과서에 관해 얼마만큼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는지를 잘 알수 있다.
『…국가안보를 위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자제하는 아량과 슬기가 필요하다』(고교사회교과서),『미국은 항상 폭정으로부터의 피난처였고 자유정신에 입각해 세계의 인권을 존중한다』(S사발간 교교영어 2­2),『다음은 식단의 보기이다. 아침­빵 버터 채소샐러드 맑은 장국,간식­감자크로켓 과일 우유…』(국교실과 4).
전교조 교과위원회를 비롯,교과서 비판론자들이 교과서내 문제대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같은 내용들은 사실 「절대진리」도 아니고 선뜻 수긍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다른 교과서가 없고,교과서 암기가 곧 입시점수로 연결되는 현 상황에서 학생들은 이를 비판없이 수용하지 않을수 없다.
이와 관련,최근 서울 휘경여중 남기정교사(30ㆍ국어)가 『국정교과서의 저작권과 검인정 교과서의 심사권등을 문교부가 독점토록 한 현행 교육법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이유있다』고 받아들여 주목을 끌고있다.
우리나라의 교과서는 문교부가 직접 또는 관련기관에 위탁해 개발ㆍ제작하는 제1종 교과용도서(국정)와 문교부의 검인정을 받아 일반저자와 출판사가 개발ㆍ제작하는 제2종 교과용도서(검인정)로 이뤄져 있다.
국정은 국민학교 전교과서,중학교의 국어ㆍ도덕ㆍ국사ㆍ사회교과서,고등학교의 국어(독본)ㆍ국민윤리ㆍ국사ㆍ사회ㆍ교련ㆍ실업선택 교과서 등이며 그외에는 모두 검인정이다.
문교부 장학편수실의 한 관계자는 『국민학교 교과서와 중ㆍ교교의 국어ㆍ국사ㆍ도덕ㆍ국민윤리 등의 교과서를 국정으로 못박는 것은 국가가 의도하는 이념을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들고 『그외 과목들도 교과서의 질적 저하,입시에서의 혼란,각종 이설이 교육에 미칠 영향,교과서 가격의 상승 등에 대한 우려때문에 검인정 제도로 묶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의도야 어찌됐건 현재 국정과 검인정 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다.
국정의 경우 수록내용과 편찬체계ㆍ개발단가 등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전문성과 다양성 발휘가 어렵고 졸속제작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문교부의 위탁으로 국민학교 도덕교과서의 개발작업을 맡고있는 한국교육개발원의 김성봉박사는 『모두 18권의 교과서를 1년반 동안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개발해야 하는데다 원고료와 삽화료로 책정된 금액이 검인정에 비해 3분의1도 안돼 집필진 선정이 어려울 정도』라며 『이보다 단 한권의 교과서에 농촌과 도시,부유층과 빈곤층등 각계각층의 학생들에게 모두 통용될 수 있는 내용을 담는다는 것이 더 힘든 과제』라고 했다.
검인정 제도 역시 마찬가지. 현재 문교부는 5년마다 있는 교육과정개편시 이를 공고한 후 불과 10개월만에 심사본을 출원토록 요구하고 있어 집필기간은 국정못지않게 짧다. 또 현재 규정상 검인정 교과서는 과목당 중학교 5종,고교 8종으로 제한되어 있어 각 출판사간의 치열한 경쟁이 항상 물의를 빚어왔다.
영어ㆍ수학등 인기과목의 경우 50∼60개 출판사가 덤벼들어 검인정 채택을 놓고 문교부측에 로비를 전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 이는 검인정으로 채택되면 5년간 독점적 교과서 판매와 관련 부교재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에는 검정에 출원했다가 불합격한 교과서 저자 18명이 심사과정에 의혹이 있다며 법정투쟁에 나서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문교부는 심사기준과 과정등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어 이같은 의혹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검정으로 채택되는데 성공한 출판사들은 이번에는 각 학교에 자기네 교과서를 사용해 달라며 또 한차례 로비를 벌여 이 과정에서 교사들에 대한 금품살포ㆍ향응제공등 비교육적인 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일선교사들의 지적이다.
전교조는 이와 관련,『문교당국이 교과서에 대해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교육을 통치의 도구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교과서제도를 상업적 요소를 배제시킨 자유발간제로 하고 그 선택권을 교사들이 갖도록 해야 국정ㆍ검인정의 폐해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곽병선교육개발원 기조실장은 교과서를 「교육의 성서」처럼 보는 「닫힌 교과서관」과 교육의 참고 교재로 보는 「열린 교과서관」의 두가지 시각이 교차되고 있다고 했다.<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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