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림 행정」속 부조리 만연/환부 드러난 의약품 유통비리(추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구매액 20% 기부명목 병원서 챙겨/인하요인 반영 안돼 환자들만 피해
의약품 유통을 둘러싼 의약업계의 고질적인 부조리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계기로 그 환부를 드러내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부터 4개월동안 의약품 유통 전반에 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부적합 의약품 유통 ▲종합병원에서의 의약품 무단제조 ▲수입의약품 폭리 및 효능ㆍ효과 과장표시 ▲약값 과다청구 ▲의약품 덤핑구매 및 기부금 수수 등의 유형으로 부조리가 저질러지고 있다고 지적,보사부에 시정을 요구했다.
이같은 부조리는 의약계의 오래된 관행으로 제도의 미비,제약업체ㆍ의료기관의 부도덕한 상혼이 원인이 되고 있으나 무엇보다 보사당국의 허술한 약품행정이 문제가 되고있다.
감사원이 지적한 의약품유통 부조리 사례는 다음과 같다.
◇부적합 의약품 유통=지난해9월 시중에 유통되는 의약품 61개 품목을 수거,검사한 결과 게리프렉스(삼희제약) 등 4종이 성분 기준함량이 미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부적합 판정된 의약품이 회수ㆍ폐기되지 않은채 비사코틴정(영일약품) 등 3종이 시중에 유통중인 것으로 발견됐다.
특히 한일양행(고래표 쌍금탕) 등 4개회사는 부적합 판정된 의약품에 대해 행정처분 직전 다량 제조,제조정지기간중에 판 것으로 드러났다.
◇수입약품 부조리=지난해 9월 시중에 유통중인 수입의약품 1백17종을 표본조사한 결과 54.7%인 64종이 신고가보다 1.6배에서 최고 10.2배까지 가격을 높여 폭리를 취하고 있으며 39종(33.3%)은 효능ㆍ효과를 과장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 은정무역이 수입한 섹소날포는 신고가 4천7백원에 비해 10.2배인 4만8천원에,반도제약이 수입한 게리아캅셀은 신고가 5천5백원에 비해 7.3배인 4만원에 팔고 있었다.
특히 게리아캅셀의 경우 혈액순환장애 치료제로 신고해놓고도 정력감퇴ㆍ조루치료제로 표시하는 등 많은 수입의약품이 효능ㆍ효과를 허위ㆍ과장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약값 과다청구=중앙대 용산병원은 시중에 유통되는 푸란콜크림(중외제약) 등 19종을 재포장,자기병원에서 제조한 의약품인 것처럼 꾸며 표준소매가보다 2∼3배씩 값을 올려받았다.
또 한양대병원 등 5개병원은 38개품목의 수입의약품을 환자에게 투약한 뒤 실구입가격보다 2천6백만원이 높게 값을 매겨 의료보험 연합회에 약값을 청구했다.
이밖에 경희의료원ㆍ인제대 백병원ㆍ한양대병원ㆍ중앙대부속병원 등 4개병원의 일반환자 약값을 점검한 결과 인가된 약값에 비해 2%에서 최고 79%까지 가격을 높여 88년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7천8백만원을 더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일동제약의 암포젤엠(15㎖)과 대웅제약 미란타(10㎖) 등은 용법ㆍ용량ㆍ제조일자 등을 표시하지 않고 국립의료원 등에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부금 부조리=전국 2백12개 종합병원 가운데 59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병원이 87년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천7백51억원어치의 의약품을 구매하면서 그 대가로 구매액의 20%에 해당하는 5백51억원을 제약회사로부터 기부금등의 명목으로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병원들은 의약품을 구매하면서 보험약 고시가의 74% 수준에서 덤핑구매한 뒤 장부상으로는 평균 95% 수준에서 구매한 것으로 처리,구매액의 20%를 랜딩비ㆍ연구비ㆍ장학금 등의 명목으로 기부받았다.
병원별 기부금은 연세대부속 3개병원에서 73억원을 비롯,18개대학병원이 3백35억9천만원,안양중앙병원 등 41개 일반종합병원이 2백15억9천만원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의약품 덤핑구매와 기부금으로 인해 환자들은 보험약값 인하요인이 있는데도 고시가에 의해 약값을 부담해야 하며 병원측은 이 기부금을 병원운영과 큰 관계가 없는 학교시설비ㆍ학교운영비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한천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