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해부 '교육특구' 대치동] 3. 사교육비에 등골 휘는 부모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9면

"학교 성적이 형편없어도 지금까지 투자한 돈이 아까워 그만두지 못한다. 다른 씀씀이는 줄여도 학원비는 최후의 보루다. 칼국수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한달에 50만~60만원 드는 어학원은 계속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수생 아들과 중1 아들을 둔 주부 P씨(44)는 서울 대치동 엄마들의 정서를 이렇게 설명한다.

대치동은 비교적 여유있는 중류층 이상이 모여 사는 동네다. 하지만 이곳의 분위기에 맞춰 사교육을 시키다 보면 부모들의 등골이 휘게 마련이다. 월급의 70~80%, 심지어 그 이상을 과외비로 쓰느라 빚을 내는 가정도 적지 않다.

남편이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인 주부 S씨(42)는 남편의 월수입 4백여만원 중 두 남매의 과외비로 최소한 월 1백60만원을 지출한다.

S씨는 "아들(고1) 친구 중 학원을 10개나 다니는 애도 있다고 한다"며 "이 같은 사교육 경쟁에 지쳐 결국 유학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올 2월 송파구에서 대치동 아파트를 전세 얻어 이사 온 그는 요즘 전세금이 오를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다.

'현대판 맹모(孟母)'인 대치동 부모 중 상당수는 교육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다.

이곳의 사교육비는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과 맞먹는 수준. 영어유치원은 한달에 70만~90만원, 거기에다 피아노.미술 등 기본적인 예체능 학원만 다녀도 1백50만원은 눈깜짝할 새에 들어간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영어학원에다 과목별 전문학원.예체능 학원 두세 군데만 다니면 과외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남편이 샐러리맨인 N씨(39)도 어려운 속사정을 털어놨다.

"같은 가격대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서 이런 걸 가르치는데 우리 집은 못 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다른 지출을 줄여도 우선 감당할 생각이다. 이 동네로 이사 온 뒤 남편이 초라해져 보인다고 토로하는 주부들도 있다."

학원비와 생활비를 견디지 못해 짐을 싸는 경우도 있다. 지방에서 몇 억원이나 되는 집을 판 뒤 대치동에 진입해도 전셋값과 학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다시 떠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 목표가 자녀들의 미국 아이비리그 진학이라는 N씨는 "아이들만 따라준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뒷바라지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노후는 연금으로 살면 된다고 했다.

이처럼 많은 학원비를 쓰는 대치동 사람들은 대부분 부유층일까.

이곳 주민과 학원강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대개 노후 대비도 해야 하는 중산층이지만 교육에 거의 모든 자원을 투입할 뿐이라는 것이다.

전문학원을 운영하는 S원장은 "이곳 엄마들은 돈도 어느 정도 있지만 사교육비 외의 다른 지출에는 인색하다. 시장 골목에서 싼 물건을 사는 등 매우 깐깐하다"고 했다.

'아이 성적표=엄마 성적표'인 이곳에서 부모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엄마는 우선 학원계의 동향 파악과 각종 정보에 빨라야 한다. 그래야 좋은 강사를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잘 나가는 학원을 골라 아이들을 모아 보내기도 한다.

반면 학원 정보에 어둡게 마련인 맞벌이 엄마의 경우 이 같은 그룹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L씨(40)는 "엄마가 정보에 어두워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처지게 된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 시험기간이 되면 온 동네가 전시(戰時)체제에 돌입한다.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는 각종 식당의 배달 오토바이들이 줄을 잇는다. 아이 끼고 앉아 암기과목을 점검해야 하는데 밥 해먹을 시간이 있느냐는 게 엄마들의 항변이다.

시험기간엔 아버지들도 집에서 사실상 쫓겨나 포장마차나 호프집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 분위기를 흐트러뜨린다는 이유에서다.

특별취재팀=정책기획부 정철근.강홍준.하현옥.권근영 기자, 조인스랜드 안장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