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호 선장(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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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밤 늦게까지 속개된 국회의 대정부질문은 주로 민생치안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야당에서는 대낮에도 마음놓고 다닐 수 없는 요즘의 치안상태를 집중 추궁하면서 『내각은 국민앞에 사죄하고 총사퇴하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고있다. 말하자면 책임을 지라는 얘기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니체는 『자기의 책임을 방기하려 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려 하지도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날짜 중앙일보에 소개된 하나호 귀환선원들의 인터뷰 기사는 실로 오랜만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미담이었다.
선장과 선원 22명을 태운 1백t의 조그만 오징어잡이 배 하나호가 만선의 꿈을 안고 부산 대변항을 떠난 것은 지난달 26일 이었다. 이들은 출어 사흘만인 지난 1일 오후 제주도 남서쪽 동중국해에서 최대풍속 18∼20m에 파고가 4∼5m나 되는 폭풍을 만났다. 점심식사를 막 끝낼 무렵이었다.
유정충 선장이 조타실에서 키를 좌우로 돌려가며 파도사이를 조심스레 헤쳐 나갔다.
그러나 그순간 거센 파도가 배옆구리를 때렸고 선체가 물속에 잠기기 시작했다.
유선장은 선원들에게 하선을 명령했다. 선원들이 구명보트에 모두 오를 때까지 선장은 계속 SOS를 타전하고 있었다.
뒤늦게 선장이 배에 남아있는 것을 안 사무장이 『빨리 배를 포기하고 탈출하라』고 고함쳤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SOS 신호를 보내고 싶었던 유선장은 동료들이 무사한 것을 보고는 배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친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남의 생명을 구한 고귀한 책임감이었다.
유명한 타이타닉호의 침몰사건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는 것은 초호화여객선이 처녀항행에서 침몰되었다는 사실 뿐만은 아니다. 위급한 순간에 어린이와 여성,그리고 노약자를 먼저 구출했다는 미담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의 도덕심과 책임감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군자는 자기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소인은 남에게 추궁한다.』 공자의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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