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교역,새 가능성과 한계/우라늄 수입은 우방에 충격 없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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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소련으로부터 원전 핵연료인 농축우라늄을 도입키로 결정한 것은 최근 급진전되어온 한소관계가 「농축」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해준다. 소련으로부터의 농축우라늄 도입은 1차적으로는 핵연료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의의가 큰 것이지만 우라늄은 핵무기와 직결될 수 있는 전략상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 경제적 의의를 뛰어넘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한소간의 수교는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때문에 늦춰질 수도 있으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인 농축우라늄의 교역이 이루어질 경우 실질적으로는 수교단계에 들어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또 이 계약이 이루어지면 다른 부분의 교역에도 새 가능성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예상되어온 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한소간 교류의 급진전은 우리나라와 서방세계,특히 미국과의 기존관계에 정치ㆍ경제 두 면에서 다같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국등 서방 각국은 공식적으로는 한소간의 관계진전을 지지해왔고 적극 지원할 의사마저 밝혀왔지만 자신들의 세계 전략이나 경제적 이익과 관련해 신경을 곤두세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련의 핵연료 공급가격은 이미 장기공급계약을 하고 있는 서방 각국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프랑스ㆍ캐나다ㆍ호주 등으로부터의 우라늄정광 도입이나 미국ㆍ프랑스와의 농축작업계약은 그 공급가격이나 계약기간,공급물량,대금지불조건,해약조건 등 모든 면에서 판매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측으로부터 불평등계약이란 불만을 사왔던 만큼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은 기존 계약조건의 재검토를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등 서방 각국이 다같이 이 새로운 변화에 대한 현실적이고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로 보아서는 핵연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나 경제적 실익을 위해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소련등 동구권으로부터의 핵연료 도입이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가 서방 경제권에 편입되어 있으며 주교역국들 역시 현재의 우라늄 공급국들임을 십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존 거래국과의 관계에 심한 충격을 주는 변화를 꾀할 경우 통상마찰로 인해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경제적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또 우라늄은 전략상품이기에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저울질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관계는 언제라도 변할 수 있으며 그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 안목에서의 배려도 있어야 한다.
미국등 서방 각국도 현실적인 자세로 문제해결에 임해야 한다. 도입가격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의 계약가격은 국제현물시장의 가격에 비해 배나 비싼 수준인 것이다. 이러한 가격체계를 계속 고집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무리일 것이다. 기존계약도 어느 정도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나 그것이 지나치게 일방적인 내용이라면 적절한 선에서의 수정을 꾀하는 것이 기존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소관계의 개선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이며 그것은 이미 눈앞에 와 있다. 그러나 그 순조로운 진전은 한국과 서방 각국이 얼마나 그것에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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