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스런 북의 땅굴 전략(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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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4의 땅굴을 발견했다는 주말의 당국 발표는 우리 국민에게 미묘한 이중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며칠전 이상훈국방장관은 국회답변에서 북한이 전 전선에 걸쳐 20여개의 남침용 땅굴을 파놓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 탐색작업을 펴고 있다고 증언했다. 바로 다음날인 3일 군 당국은 『동부전선 비무장지대 남쪽에서 땅굴 하나를 찾아내 그 실체를 직접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소식은 유사시 실용화될 경우 우리에게 가공할 위협이 될 수 있는 지하 군사통로 하나가 제거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평화지향적인 세계대세에는 아랑곳없이 반민족적 호전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북의 작태에 대한 개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도대체 북한은 이렇게 땅굴을 파서 어쩌자는 것인가. 더구나 이 땅굴은 지난 71년 김일성이 기습 남침을 감행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지하로 관통하라고 「교시」하면서 『하나의 갱도는 10개의 핵폭탄보다 효과적이며 요새화된 현재의 전선을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강조한 이후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한심스러운 일이다.
지금 유럽에서는 소련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군비축소와 통제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동북아의 미소 주둔군에까지 확대되어 한반도에서도 주한미군의 감축과 미국의 한국군지휘권 이양등 미국개입의 축소가 이뤄져 나가고 있다. 이런 판국에 북이 계속 땅굴을 판다면 한반도 평화정책의 전제조건인 신뢰감 구축은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다.
제4땅굴과 관련한 우리의 관심사는 북한이 언제 그것을 팠는가,북한은 지금도 계속 땅굴작업을 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당국의 정밀조사 결과 곧 밝혀질 터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차라리 과거 70년대에 파놓은 낡은 땅굴의 하나이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군당국은 최신 첨단장비와 외국인 기술진을 동원하는등 땅굴 탐색작업에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
북한쪽도 마찬가지다. 기술과 장비가 열악한 그들이 20여개의 땅굴을 파는 데 소모했을 병력과 시간ㆍ노력은 상상하고도 남을 만하다.
무엇때문에 이처럼 대외적으로 창피스럽고 대내적으로 부질없는 일에 민족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가.
북한은 같은 분단국가인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최근의 사태변화를 겸허하게 관찰해야 한다. 인적ㆍ물적,그리고 문화적 자유왕래가 이뤄진 동ㆍ서독은 연내 통합론까지 거론하면서 통일후의 대외정책과 군대ㆍ화폐의 통합문제까지 논하고 있지 않은가.
막대한 비용과 군의 노고끝에 이뤄진 제4땅굴의 발견은 그 자체로서 높이 평가될 만하다. 그러날 이것이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고 남북관계를 후퇴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관계의 경색을 막기 위해선 북은 과거처럼 진상을 은폐ㆍ왜곡하거나 우리측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기존의 땅굴을 모두 폐쇄하여 진정한 화해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땅굴을 파고 그것이 발각되자 지뢰까지 매설해 인명을 손상하려든 북의 자세로는 대화고 교류고 무망하다. 북은 이 점을 깊이 반성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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