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쇼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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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에서 15년만에 고국을 찾은 내 친구는 서울시내의 쇼핑정보를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많이, 더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이태원에 가면 미국에서 수백·수천달러나 하는 샤넬·크리스천 디올·구찌등 세계 유명상품의 가짜를 몇십달러에 살 수 있고, 해마다 바뀌는 의류와 장신구의 유행을 거기서 찾아낼 수 있으며, 운동화와 면세보세품은 평화시장 어디를 가야 사는지 두루 꿰고 있었다. 그는 이런 정보들을 미국에 오는 한국인과 한국에 자주 드나드는 재미동포들을 통해 익혔다는 것이다.
미국을 떠날 때 한 동포는 내 친구에게 한국에서 단돈 40달러만 주면 미국에서 1천4백달러하는 핸드백과 똑같은 가짜를 살 수 있어 그야말로 횡재가 아니냐고 의기양양하게 일러 주고는 돌아올 때 짐이 많은 한국사람들은 미국공항에서 조사가 심하니 조심하라는 주의까지 귀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그와 함께 막상 시내 백화점 구경을 갔을 때는 우린 둘이 다 상상이상으로 더 많고 화려하고 생소한 고급수입품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내 친구는 지방시라는 상표 앞에서 『지벤치는 또 뭐지?』하고 촌사람처럼 물어 점원의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는 지방시라는 이름은 못들었는지 영어식으로 그렇게 읽었다).
나는 직업상 프랑스신문·잡지를 오랜 세월 대해온 관계로 거기 실리는 광고를 통해 상품의 이름도 비교적 일찍부터 꽤 알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도 요즘 서울에 속속 등장하는 외국의 상표이름들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져 내 지식이 더는 따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내 친구에게 미국의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유명상품 하나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가 미국에서 제 손으로 그런 걸 사지는 않을테니까).
하지만 내 친구는 이런 이야기로 끝내 내 뜻을 사양했다.
진짜는 미국에서보다 터무니 없이 비싸서 싫고, 그렇다고 수천달러짜리 물건의 가짜(모조품)를 몇십달러에 산들 횡재의 즐거움은 커녕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싫어….
오징자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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