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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방안「찾는 영유권 반환|본사 안희창기자 쿠릴열도 4개섬 가다④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이 구나시리섬을 일본에 반환한다해도 우리는 나가지 않을 겁니다.』
일본이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북방4개 도서」 중의 하나인 소련령 구나시리섬―.
이곳에서 만난 소련인들의 대부분은 한결같이 단호하게 「반환불가」에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꼭 그렇게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간혹 나오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유일한 한국계인 김진화씨 집에서 만난 알렉산더씨(36)는 『보다 잘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 예를 들면 소련정부와 일본정부와의 공동관리 같은 것도 고려할만하다』 고 말했다.
알렉산더씨와 자리를 함께 했던 다른 3명의 소련인들도 『양국정부가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 영토권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있어야한다』는데 거의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결국 명분상으로는 반환이 있을 수 없지만 40여년이 넘도록 「불편한 생활」을 해온데 따른 일종의 「반발심」도 스며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이 지역당간부등 관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구나시리섬 공산당 제1서기인 테레스코씨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4개 도서의 반환이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잘라 말했다. <2월20일 본지17면 참조>
그러나 다른 한 간부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연방정부가 4개 도서 반환문제에 융통성을 발휘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사할린스크에서 만난 사할린지역 공산당 사상담당서기인 벨로노소프씨는 『레닌그라드가 소련영토이듯 4개 도서도 소련영토』 라고 힘주어 말했다. 1703년 표트르대제때 레닌그라드를 건설한 이후 이곳이 소련영토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4개 도서도 소련의 발전과정에서 얻어진 소련영토라는 것이다.
4개 도서의 영유권을 놓고 일본과 소련은 지난 56년부터 협상을 벌여왔으나 양국의 입장은 팽팽히 맞서 있다.
양국은 56년 「일소 공동선언」을 발표, 국교를 회복하면서 소련은 강화조약이 체결되면 하보마이군도와 시코탄섬을 일본에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아직도 법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있는 양국은 강화조약 체결을 위해 교섭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측이 4개 도서의 우선적 반환을 요구하고 소련은 이를 거부, 아직까지 강화조약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양국의 이같은 한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은 대립은 「자존심대결」이라는 측면과 함께 미·일·중·소간의 관계변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즉 미-중-일 「삼각동맹」이 형성되고 소련이 이에 반발, 극동에 군사력을 강화할 시점에는 협상다운 협상이 열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85년 권력을 장악, 대외 평화공세를 걸치면서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중소간에 우호관계가 회복됐다. 지난 4년간 고르바초프를 예의주시해 온 미국도 몰타정상회담을 계기로 고르바초프에 대한 「신뢰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세계3대 열강의 관계발전과 함께 미-중-일 삼각동맹관계도 사실상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게 되고 일소간의 4개 도서에 대한 협상폭도 커지게 됐다.
이와 함께 소련의 태도가 전과같이 경직되어 있지 않다는 징후는 여러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소련 정치지도층 내부에서 「다른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게라시모프 소 외무부대변인은 20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옐친은 5년내 반환을 주장하고 있고, 다른 관리 및 최고회의 대의원들도 반환에 찬성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4개 도서 반환이 전후국경문제 처리에서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반대론자도 많다』고 시인했었다.
소련은 지난해 11월 일본을 방문한 정치국원 야코블레프를 통해 「제3의 방안」을 제안했었다.
즉 두개의 상반된 견해가 도저히 조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광범위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제3의 길」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소련이 어느정도 태도변화를 보이는데 비해 강경일변도의 일본측은 아직도 이렇다할 특별한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시점에서 「아쉬운 측은 소련」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일본내에서도 절충을 해야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카지마 미네오교수 (중도령웅·동경외대)는 『일본외교는 야코블레프가 제시한 「제3의 방안」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고 한 기고문에서 밝혔다.
소련으로서는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은 40여년동안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해온 섬을 일본에 그냥 넘겨주기는 명분상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소련외교정책의 양상은 4개 도서의 대일본 일괄반환 협상에서 극적인 양보를 내놓아 타결의 실마리를 풀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소련은 독일통일문제와 관련, 처음에는 「불가」였다가 통일독일의 중립화로 한 걸음 물러선 뒤에 다시 지난 10일에는 『중립화만이 유일한 안은 아니다』(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 로까지 발전,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통일은 얄타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며 이것은 동시에 구나시리등 4개도서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다만 소련이 제시할 수 있는 양보는 소련의 안보문제를 고려, 일본의 기술 및 자본의 대소 대규모 투자 조건아래 4개 섬을 비군사화한다는 선에서 마무리 될 가능성도 있다.
구나시리 취재진을 안내한 소련외무부직원 드미트리씨는『4개 섬 반환문제는 결국 내년 봄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일본 방문때까지 소일양국의 국내사정 변화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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