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바른 정박아의 순수한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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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깜박 졸다 누군가 발을 밟는 바람에 눈을 떴다. 발을 밟은 소년은 특수학교에 다니는 정신박약아였다. 그 소년은 바로 『미안합니다』하고 조금은 어눌했지만 정중히 사과하며 손으로 내 구두를 닦아주려 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실수였지만 그 소년은 내가 당황할 만큼 송구스런 표정으로 깊은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구두 닦으려고 몸을 구부리는 그를 말리려 할 때 마침 옆자리가 비어 그가 앉게됐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에게서 순수성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몇 정거장이 지났을까, 한 할머니가 타자마자 그 소년은 바로 일어나 할머니에게 다가가 자기가 앉았던 곳에 앉혀 드렸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히 담고있던 그때 그의 표정은 순수 그 자체였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듣기가 참으로 어렵고 노인을 공경하는 태도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 이 정박아소년이 보여준 순수한 행동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미국 정신지체협회의 정의에 따르면 지능검사 결과 평균지능지수보다 2편차 아래 등급(지능지수70이하)에 속하고 언어나 적응 행동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정신지체자로 구분한다. 이들은 일상적 동작이나 이해, 사회적응, 의사소통등의 능력이 정상인에 비하면 상당히 열등하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이 소년의 경우 누군가(부모 혹은 교사)가 헌신적 사람과 도움으로 예의를 가르쳐줘 공경과 양보, 겸손의 미덕을 생활화했을 것이다.
이처럼 정박아도 가르치면 예를 갖출줄 아는데 하물며 많은 정상인들, 혹은 그 이상의 수재들은 오랜 세월동안 각종 교육을 받고 사회로 배출되지만 지식만을 기계적으로 학습할 줄만 알았지 윤리의식은 기르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이고 타산적 성향을 버리지 못해 사회를 더욱 메마르게 하고 있는 느낌이다.
합격위주의 사회에서 교육의 본질이 외면당하고 학력수준 향상과 비례해 날로 더해가는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에 비추어 보면 진짜 정박아는 지능지수가70이하인 정신지체아가 결코 아니고 잘못을 저지르고도『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고 겸손을 수치로 여기며 웃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도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달포전 만났던 그 정박아소년의 순진 무구함을 떠올린다. 나이들수록 현실적 계산에 밝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자기 본위로 살아 가는게 보통인 요즘 세태에서 그 소년은 하나의 귀감이요, 스승이었던 것이다. <경기도 안양시 안양6동><목 사>최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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