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우리 경제에 1% 부족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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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40년 전 우리나라가 무척 가난하던 시절에 나는 우리나라를 잘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대학에서도, 그 후 국내외의 대학원에서도 이를 배울 수 없었다. 그 후 이 책 저 책 읽으면서, 특히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을 읽으면서, 또 여러 세상사를 보고 생각하면서 국가의 경제발전에 비법은 없으며, 개인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으나 나라의 경우에는 국민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만큼 잘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제학 전문서적에 나오는 어려운 수식(數式)으로 표현되는 이론들은 나라를 잘살게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개인과 달리 국가와 같이 많은 사람으로 구성되는 사회의 경우에는 잘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구성원 간의 상호 협조다. 사회에서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분업과 협업의 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엮여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시스템이 구성원 간의 상호 협조에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올바른 윤리의식 내지 마음가짐일 것이다. 정직과 성실.책임감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될 것이지만, 특히 필요한 것이 염치심(廉恥心), 즉 부당한 요구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책임을 성실히 행하는 마음일 것이다.

늘 그랬지만 요즈음 우리 경제에 대한 소위 전문가들의 비관론이 부쩍 무성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남미 국가들이나 필리핀 수준으로 우리 경제가 추락한다거나,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남미나 필리핀 사람들과 달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우리 국민의 성향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경제가 후진국으로 추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중남미나 필리핀처럼 될 것이라는 주장은, 우리나라와 이들 나라 간의 근본적 차이를 모르는 무지한 소리다. 중국도 지금과 같은 심한 정경유착과 부패와 억압을 고치지 않는 한 우리보다 잘살기 힘들 것이다.

요즘 지식을 강조하는 것이 세계적 유행이다. 생산.경영.시장 등에 관해 보다 좋은 지식이 경쟁력 향상에 큰 보탬이 됨은 분명하지만, 지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경제활동에서의 원활한 상호 협조를 가능하게 하는 높은 윤리의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 세대 동안 서독이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훨씬 순조로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서구 국가들이 노사 갈등으로 수많은 파업을 겪을 때 서독은 노사 협조 덕분으로 파업을 거의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서독이 똑같이 과학기술의 선진국이었던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과학기술에서 더 높은 수준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서독의 노사 평화를 노조의 경영참여라는 제도에서 찾기도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노사관계를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생관계로 인식한 서독 국민의 의식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기술은 전자.철강.조선.생명공학 등 여러 첨단 부문에서 이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 경제를 선진국 수준이라 이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게 있다. 세계를 돌아다녀 보면 후진국일수록 부패가 심하고 사회윤리가 낮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윤리 수준이 아직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현재 우리 경제에 부족한 것은 지식이라기보다 윤리의식이 아닐까? 우리 국민이 정직하고, 서로 배려하고, 자기만 잘살겠다고 억지를 부리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합심하고 노력하여 분열과 갈등의 사회 분위기를 상생의 분위기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