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사학재정 정책지원 절실(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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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리기관 취급… 법인세등 세금만 13가지/기부금 입학ㆍ학교채 검토를
서울S학교법인 재단이사장 김모씨(68)는 최근 자신의 처지를 한마디로 「빛바랜 개살구」라고 비유한다.
욕은 욕대로 먹고 실속은 실속대로 없는 사학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나타내 주는 말이다.
학교재단은 이제 학생들에겐 「북」이고 세무당국엔 「봉」이고 교직원들에겐 「졸」의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 사학운영자들의 자탄이다.
그중에서도 재단운영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빈사직전」에 놓인 학교재정 상태.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는 도저히 버텨나가기조차 힘들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웬만한 사립대학치고 수백억원대의 부채를 지지않은 학교가 없습니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획기적인 조치없이 이대로 두다간 얼마안가 사학은 고사하고 말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특히 전국 1백4개 대학중 81개 사립대의 경우 학교운영비의 78.2%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하는데다 정부보조 내지 지원은 고작 1.1%에 그쳐 사학의 재정환경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서울 A대의 경우 필요한 연간운영비는 5백억원인데 걷히는 등록금은 4백억원에 불과해 재단에서 매년 60억원씩을 메워주고도 40억원의 적자가 나고있으며 그렇게해서 누적된 부채가 3백억원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자구능력이 현실적으로 부족한 사학의 입장에선 결국 기댈곳은 정부뿐이지만 실상은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사학관계자들의 불평이다.
학교라는 특수여건이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채 영리기업이 내는 세금을 거의 똑같이 물어야하는 것이 제일 괴롭고 힘들다. 같은 공교육을 하면서도 세금이 한푼도 없는 국ㆍ공립과는 엄청난 차별이다.
학교법인이 내는 세금의 종류는 법인세ㆍ특별부가세ㆍ방위세ㆍ부가가치세ㆍ재산세ㆍ취득세 등 모두 13가지에 달하고 있다.
사학재단이 공익기관이라 하여 광범위한 통제로 준공립화시켜 놓고 세금징수면에서는 철저히 영리기관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년전에는 강북지역 사학들에 강남으로 이전을 권장하면서 「이전에 따른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해놓고 예외없이 구교사매각에 따른 세금을 부과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학교땅의 일부를 팔아 세금을 냈던 한 학교관계자의 주장이다. 물론 공립학교는 과세대상에서 제외됐었다.
각종 공과금도 사학은 영리단체와 똑같이 부담한다. 전기요금의 경우 국ㆍ공립이야 국고로 처리하면 그만이지만 사립학교는 관광호텔보다도 30%나 비싼 요금을 물고 있다.
『컴퓨터 하나를 해외에서 수입한다해도 실험실습기재가 아닌 학교비품으로 수입하면 관세를 물어야 합니다.』 K대학 관계자의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종합토지세가 시행되면 사학은 엄청난 금액의 세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심지어 수익용 기본재산인 토지의 실제 수익액보다 조세부담이 더 많아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 되게 됐다.
연세대의 경우 과표표준액이 95억5천7백만원인데 지금까지 5천3백만원의 세금을 물던 것을 앞으로는 3억3천8백만원을 내야한다.
동아대도 3천9백만원에서 1억5천8백만원,한양대가 3천2백만원에서 5천5백만원을 내야하는 등 추가부담이 생겨났다.
등록금도 마음대로 못 올리고 영리기업과 거의 똑같은 세금을 물어야하는 사학은 기부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국ㆍ공립학교의 경우 기업체가 내는 기부금이 얼마건 간에 전액 면세해 주면서 사학에 대해서는 소득의 10%와 자본금의 2% 이내만 인정,이를 초과할 경우 세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모기업으로부터 5천만원의 기부약속을 받았다가 취소당한 적이 있는 서울H고교 관계자는 『1천여만원의 세금을 따로 물면서까지 기부금을 낼 수는 없다는 것이 기업측의 해명이었다』고 밝혔다.
『과거에 많은 사학들이 편ㆍ입학 등을 둘러싸고 거액의 찬조금을 받아 유용한 사례가 흔했기때문에 「비리엄단」의 차원으로 정부가 일관한 나머지 선의의 기부행위마저 끊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 사학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그나마 조세감면규제법에 따라 지난 85년부터 예금등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물지 않던 것도 지난해에 법이 개정되면서 다시 세금을 물게 됐다.
이같은 사학의 재정난은 교육투자의 약화를 가져오고 결국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중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미 하버드대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생수가 7명인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50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어느 학교치고 교수를 늘리는 새로운 투자는 엄두를 못내고 있다.
『현재의 악화된 사학재정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기부금 입학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정부지원을 늘려주어야 하며 학교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C대학 재단관계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대학도 영국이나 미국처럼 등록금 의존도를 20∼30%까지는 못내리더라도 50∼60% 수준까지는 내릴 수 있어야만 교육환경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현재와 같은 사학의 어려움은 그동안 사학운영자들의 안일한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제도의 개선이나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기에 앞서 자기개혁의 실천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이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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