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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멈춘 부채엔 아름다움이 살랑살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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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여름, 땡볕에 나앉았을 때 부치는 부채 바람은 선풍기나 냉방기 바람에 비길 수 없다. 에어컨이 좋다 한들 자연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부채만할까. 살갗에 닿는 감촉이 다르다. 그뿐이랴. 부채에 한 줄 얹은 좋은 글귀나 서늘한 그림은 생활 속의 멋이자 풍류다.

8일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막을 올리는 '바람 속의 글.그림-가을에 보는 부채'는 예술품으로서의 부채를 되돌아보는 기획전이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가을이 되면 서화 부채에는 예술만 남는다"며 철 지난 가을에 부채전 여는 까닭을 말했다. 강 관장은 또 부채가 "바람을 불러오는 전령으로서의 기능이 약화 되어 실용적 기능과는 무관해지고 아름다움만을 목적으로 하는 장르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영인문학관을 지키는 문학평론가 이어령.강인숙 부부의 부채 그림 수집 역사는 30여 년을 헤아린다. 작고한 시조시인 김상옥.이상범, 소설가 박종화.김동리, 시인 서정주.박두진, 화가 박생광.서세옥씨 등 교유한 문인과 화가의 부채 그림이 넉넉하게 나왔다. 김구용 시인은 '인은 드러내고 실용성은 감추다'는 '주역'의 한 구절 '顯仁藏用(현인장용)'을 써 부채의 덕을 칭송한다.

강 관장은 "부채를 그려주신 모든 분들께 합장하며 경건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부채를 주고 받으며 예술성 짙은 마음까지 보내는 아름다운 전통이 되살아났으면 하는 뜻이 전시에 배어있다.

전시는 30일까지. 8일 오후 5시 한국화가인 일랑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자생미학으로서의 선면화'를 주제로 강연한다. 02-379-3182.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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