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갈등 구로고 사제(마음의 문을 열자:2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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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투신 입원­석달 문병에 벽 헐렸다/“이젠 장래도 함께 논의”/학원등록비 대주고 대입낙방 위로
『비록 자네에게 존경받는 스승은 못 되더라도 바른 사도를 위해 애쓴 선생으로 남게되길 바라네.』
14일 오후1시 서울 구로고 교장실.
오전 졸업식을 치른 구창모교장(62)과 전 학생회장 유호철군(18)이 감회의 작별인사를 나눴다.
내달이면 34년 교직생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신설 청담고로 떠나는 노스승과 한때 문제학생으로 교내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제자. 두사람의 남다른 인연은 전교조열기가 구로고를 몰아치던 지난해 6월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생회장 유군은 전교조분회결성 해직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동료간부 1명과 함께 본관 3층교실에서 7m아래 화단으로 투신했다.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은 동료학우와는 달리 목과 척추를 크게 다친 유군은 그후 3개월간을 고려대부속 구로병원에서 병상생활을 해야했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아 쳐진 당시의 저로서는 최선이자 마지막 선택이었죠.』
경악과 충격을 안겨준 사건.
특히 『중등교육은 예절과 도덕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일관된 소신의 구교장에게는 더 큰 충격과 비애였다.
지난해 3월 교장으로 부인한 이후 「민주교육」을 열망하는 교사들과의 갈등과 충돌,서울시내 공립학교중 최초의 전교조분회 결성,교사징계,출근투쟁,학생들의 동조농성 등으로 이미 심신이 탈진상태에 빠진 구교장이었다.
『민주화 역행 교장,학생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무능력 교장 등 비난이 빗발치더군요. 사표를 3개월간이나 넣고다니며 쉽게 괴로움을 떨쳐버리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6순의 내가 진정해야할 선생의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지요.』
구교장은 이날부터 하루도 빠지지않고 유군을 병문안했다.
통증으로 제대로 목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려는 유군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1주일쯤 후.
『죽을지도,혹은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주위 모든것에 대한 원망의 연속이었어요. 처음엔 교장선생님의 행동이 위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더군요. 3개월을 하루같이 찾아와주시는 모습에서 고행하는 수도승의 환영을 뵈ㅆ어요.』
구교장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이므로 중징계해야한다는 교사들의 의견도 묵살했다.
「자식을 망쳐놓은」 학교와 교장을 원망하던 아버지 유우현씨(50ㆍ인천시 산곡동) 등 가족들도 유군의 마음이 움직이자 구교장과 장래를 진지하게 의논하기 시작했다.
유군 본인도 퇴원후 구교장과 가족들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일단 눈앞의 불인 대학진학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학업공백을 메우기 위해 독서실에서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한 끝에 전기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였다.
그러나 구교장과 교사 등은 본인의 진지한 자세와 1,2학년때 우등을 다투었던 명석한 두뇌로 보아 내년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2남1녀의 막내인 유군은 사업에 실패하고 쉬고 있는 아버지,식당일을 나가는 어머니,공원인 누나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학원 종합반에 등록할 형편이 못됐다.
구교장은 유군을 Y학원 종합반에 등록시키고 1년간 등록비를 대신 지불했다.
『대학에 진학한뒤 사회개혁운동을 하거나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진학할 때까지만은 행동을 유보하길 바라네.』
『비록 저의 지난1년간 활동을 추호도 후회하지 않고 진학 그 자체를 목표로 생각하지도 않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잡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진학하도록 하겠습니다.』
굳게 마주 쥔 스승과 제자의 두 손은 또하나의 「고교시절 낭만과 추억을 만들기」였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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