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듭나는 동구 언론/헝가리ㆍ루마니아 새신문 줄이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당 기관지도 정부비판 기사 게재/정부보조 끊기고 독자줄어 고전
동유럽국가들은 요즘 언론에 관한한 백가쟁명의 시대를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새 신문들이 우후죽순처럼 창간돼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내기에 여념이 없다. 공산당 기관지에 눌려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던 기존 신문들마저 「새시대」를 맞아 일약 민족지를 표방하며 재등장,여론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당 기관지등 관영 매체를 통한 「한목소리」밖에 없었던 이들 나라에 이같은 변화가 생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개혁과 민주화 바람 때문이다.
민주화 바람이 얼어붙었던 언로를 녹여놓은 것이다.
심지어는 과거 공산당 정책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관영매체들 조차 독자들에게 「과거 불문」의 양해를 구하며 필진과 논조에서 환골탈태,경쟁에 나서는 바람에 동유럽 언론계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고 있다.
전 당기관지들은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당으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는 한편 1면 머리 부분에 있던 스탈린식 상징문장을 지우고 타블로이드판으로 규격을 축소하는등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루마니아에선 차우셰스쿠의 처형과 동시에 모습을 감춘 정부기관지 신테이야를 대신해 루마니아 구국전선위원회 기관지인 아데바룰(진실)지가 창간됐다. 이 신문은 구정부의 비정뿐만 아니라 새정부의 잘못도 일일이 지적 보도하는등 활발한 비판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는 티네레툴 리베르지(자유청년)를 비롯,농민당ㆍ자유당 등 군소정당들의 기관지들도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공산당 지도원리 선전에 앞장섰던 트리뷰나 루두지가 「트리뷰나 콩그레소와」로 제호를 슬그머니 바꾸고 군소 신문으로 전락했다. 반면 과거 자유노조의 지하 기관지였던 가제타 위보르차지가 발행부수 40만을 자랑하는 최대 일간지로 도약,이미 자리를 잡았다.
헝가리의 사정도 이와 별차이가 없다. 정부기관지로서 막강한 위세를 떨쳤던 마자르 히르라프지는 지난해 11월 영국의 언론재벌 로버트 맥스웰에게 지분 40%를 매각,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당기관지였던 네브차바그사그지도 정부 보조금마저 끊긴 상태에서 구독률이 30%나 격감,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도 「신문은 통제의 도구」라는 레닌의 강령이 절대적이었던 시절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동구에서 거의 매일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당고위층과 비밀경찰의 비행ㆍ부패에 대한 가차없는 폭로ㆍ비판이 신문지면의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국민들이 더이상 당 정책을 「전달」받기위해 신문을 보는것이 아니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동구와 나라밖 세계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위해 신문을 사보기 때문에 철저한 사실보도와 비판기능이 신문의 본령이 된지 이미 오래다.
동구의 「신언론」이 안고있는 고민중의 하나는 언론이 「시대적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생 신문사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기존 신문사가 극심한 인사적체로 골치를 앓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60세를 넘긴 고령자들이 많아 「새시대」를 맞아서도 퇴진을 거부하고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어 신문 체질개선과 이미지 창출에 큰 장애물이 되고있다.
체코 공산당 기관지인 루데프라보지의 신임 편집국장 포리브니는 『이들 구시대 인사들은 서방세계에 대해 과거와 같이 일방적이고 광신적인 비난을 일삼는등 공산독재 시대의 「낡은」 가치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사건건 하벨 대통령의 정책에 시비를 거는등 개혁을 가로막는 일에 서슴지 않고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새로 태어난 동구 언론들의 앞날이 꼭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언론자체가 부단한 내부개혁의 노력을 하고 있을뿐 아니라 첨예한 경쟁을 통해 국민들이 심판을 거쳐 국민의 「참언론」으로 자리잡기 위해 힘찬 발돋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세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